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 때에 예 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 이라."(마태복음 27:35~38, 46)
마태복음 27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장면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땅은 침묵하며, 사람들은 그 앞에서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옷을 나누었습니다. 인간의 무지와 죄악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길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조르주 앙리 루오(Georges Henri Rouault)의 그림은 바로 이 장면을 깊은 묵상으로 담아냅니다. 그는 단순히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빛과 어둠, 색과 표정, 그리고 인물들의 자리 배치를 통해 십자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영원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림 속 배경은 음침하고 하늘은 어둡습니다. 십자가의 윤곽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어 보는 이의 마음에 무거운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둠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과 몸은 비교적 밝게 드러납니다. 이는 십자가의 고통이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듯, 십자가의 고통은 결국 부활의 빛을 향해 나아가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하늘에 비친 붉은 빛은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그것이 황혼인지 새벽인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만약 황혼이라면, 이는 예수님께서 죽음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시는 장면일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황혼 위에 떠오를 부활의 아침을 암시합니다. 만약 그것이 새벽이라면, 이는 부활의 기쁨 속에서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예수님의 고통을 우리에게 기억하게 하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루오는 감상자에게 선택지를 남깁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둠과 빛, 고통과 소망이 만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림의 인물들은 십자가 사건을 해석하는 상징처럼 서 있습니다. 십자가 왼편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무릎 꿇어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은 믿음이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희망이 사라질 때도 붙드는 것이며,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것입니다.
오른편에는 푸른 옷을 입은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고통 앞에서 깊은 슬픔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그 무거운 가슴은 사랑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합니다.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에서 무너져 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아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으로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 서 있는 요한은 고개를 들어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는 미래를 향한 소망을 상징합니다. 요한의 눈길은 단순한 애도가 아닙니다. 그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분 안에서 여전히 소망을 붙잡습니다. 소망이란 단순히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루오는 십자가 아래 세 사람을 통해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한 세 가지 덕목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러나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십자가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믿음의 길, 소망의 길, 사랑의 길을 동시에 보여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루오의 그림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십자가 아래 어디에 서 있습니까?"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무릎 꿇고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마리아처럼 사랑으로 예수님과 함께 아파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요한처럼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어둠은 단순한 절망이 아닙니다. 그 어둠은 믿음의 무릎을 세우고, 사랑의 가슴을 뜨겁게 하며, 소망의 시선을 들어 올리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십자가 앞에서 다시 한 번 부르심을 듣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를 붙들라. 그러나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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