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 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누가복음 23:44~49)
누가복음 23장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 그러나 동시에 가장 찬란한 빛이 터져 나온 순간을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호흡을 내쉬며,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외치실 때, 해는 빛을 잃고 성소의 휘장은 찢어졌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해,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을 목격한 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장면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붓과 조각칼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피에타란 ‘긍휼’ 혹은 ‘자비’를 뜻하는 단어로, 예수님의 시신을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예술 주제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여느 피에타와 달리, 성모는 늙은 어머니가 아니라 소녀와 같이 순수한 모습이고, 예수님의 시신은 상처 입고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믿었던 바, 곧 동정녀 마리아는 영원히 순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죄 없으신 예수님은 흠 없는 육체를 지니셨다는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너무 완벽한 작품이었기에, 사람들은 도저히 스물네 살 청년의 솜씨라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이름을 성모 마리아의 옷고름에 새겼습니다. 그러나 곧 후회했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자신은 한낱 조각 하나에 이름을 새기고 싶어 했던 것이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그 회개 이후 그는 어떤 작품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아주 작은 선행 하나에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는지 모릅니다. 신앙의 행위마저도 누군가에게 드러나길 원하며, 은밀히 계신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눈을 더 의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고 말씀합니다.
피에타의 메시지는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작품의 감동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긍휼(자비) 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긍휼히 여겼습니다(요 19:25~26).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마 9:36, 막 6:34).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와 연약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눅 1:54).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혹시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 차서, 진정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세상의 모든 약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피에타를 바라보며 우리는 배웁니다. 진정한 신앙은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긍휼을 남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세상의 눈에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숨은 자리에서 긍휼로 누군가를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며 맡기신 것은 영혼뿐만 아니라, 긍휼로 가득 찬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 전파하는 참된 제자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긍휼이 가장 크게 드러난 순간이고, 피에타는 그 긍휼을 예술로 형상화한 상징이며, 우리의 삶은 그 긍휼을 이어받아 세상 속에서 약자를 품고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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