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0~14)
“주님께서 아하스에게 다시 이르셨다.” 이 구절은 성경의 역사와 신학을 관통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임마누엘’,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단순히 위로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날카롭게 충돌하는 현장에서 선포된 것입니다.
아하스는 기원전 8세기 후반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유다의 임금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주님께서 붙잡으셨다”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성경은 그를 믿음 없는 왕으로 그립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북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손을 잡고 강력한 앗시리아 제국에 대항하는 반(反)앗시리아 동맹을 결성했습니다. 이 동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침략당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두 나라의 연합군은 아하스를 굴복시키려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사야 예언자는 아하스에게 찾아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그들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 표징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아하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사 7:12)
겉으로는 신앙적인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미 마음속에 다른 계획을 세워둔 것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의지하기보다 강대국 앗시리아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은 당장의 위기를 피했지만, 그 댓가로 무거운 조공을 바치며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아하스는 앗시리아의 문화와 종교를 본받아, 다마스쿠스의 이방 제단을 본떠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기까지 했습니다(왕하 16:10~18). 성경은 아하스를 두고 “그의 조상 다윗과는 달리, 주님의 눈에 드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단언합니다.
아하스의 문제는 단순한 정치적 실패가 아닙니다. 그의 근본적인 잘못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에 있었습니다. 눈앞의 위기 앞에서 그는 신앙 대신 계산과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표징을 구하라”고 하셨을 때조차 그는 거절했습니다. 이는 겸손이 아니라 불신앙이었습니다. 마치 “하나님, 당신의 능력은 필요 없습니다. 나는 다른 방법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결과 아하스는 왕좌는 지켰지만, 나라의 영혼과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백성은 우상 숭배로 물들었고, 유다는 앗시리아의 압박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아하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거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여전히 이렇게 선포합니다. “보라,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며, 구원을 이루신다는 표징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약속이 먼저 히스기야와 같은 의로운 왕에게 희망으로 주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예수님은 참된 임마누엘로 오셔서 우리의 죄와 두려움 가운데 친히 함께하셨습니다.
아하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위기와 두려움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힘, 사람의 전략, 눈앞의 계산에 기대려 합니다. 기도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을 먼저 찾고, 믿음보다는 눈에 보이는 안전망을 붙듭니다. 그것은 아하스가 걸었던 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너희가 구하지 않아도 임마누엘의 표징을 주겠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당신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곁에 오셔서 불신앙의 어두움을 깨뜨리고, 진정한 자유와 구원을 주시는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아하스는 왕좌를 지켰으나 믿음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불신앙 속에서도 임마누엘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아하스처럼 흔들리고 계산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구원은 우리의 책략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리는 이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라면 우리는 위기를 넘어설 뿐 아니라, 참된 구원의 길을 걷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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