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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이야기

경험을 통해 생각이 변하다 -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경험의 의미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9.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며 점점 자기 정체성(identity)을 세워 가는데, 이 과정이 순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 자기 정체성을 완전히 찾지 못한 청소년들이,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장애물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부모의 영향은 절대적입니다. 부모의 생각과 가치관이 무의식중에 자녀에게 심어지기도 하고(내사), 때로는 부모의 기대나 상처가 자녀에게 전가되기도(투사) 합니다. 이런 왜곡된 심리적 영향은 정서 발달에 큰 흔적을 남기며, 때로는 병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청소년의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철학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독립적인 인격체로 서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본능적인 단계입니다. 이 시기를 잘 지나면 자신만의 특성을 발견하고, 성인이 되어도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막히면 갈등이 깊어지고, 그것이 비행이나 반항 같은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행동은 단순한 문제 행위가 아니라, “제발 나를 좀 이해해 달라”는 내면의 외침이자,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몸부림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정체성 탐구는 영적인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신학적으로는 이것을 ‘
소명에 대한 갈증’이라고 부릅니다. 청소년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듯이, 신앙인도 “하나님이 나를 왜 부르셨는가? 나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쓰임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문제는 교회가 이 질문에 충분히 답해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규모가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대부분의 교회가 개인의 부르심과 달란트를 면밀히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훈련을 제공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작은 교회는 인력이 너무 부족해 ‘
부르심’이나 ‘적성’을 따질 겨를이 없습니다. 성가대원도, 중고등부 교사도, 신앙의 깊이나 재능보다는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형 교회라고 해서 이 부분이 철저한 것도 아닙니다. 그 결과,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소명과 무관하게 사역에 참여하거나, 아무런 방향 없이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이 그대로 성인이 되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터져 나옵니다. 사회 부적응, 관계 갈등, 심지어 결혼 생활의 파탄까지도 여기에 뿌리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배우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면, 그 일에서 소명 의식이 생길 리 없습니다. 결국 일은 단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즐거움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회 초년생들이 5년을 채우기도 전에 회사를 떠납니다. 대기업 신입사원 중 약 20%가 1년 안에 퇴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일이 즐겁지 않고 성취감이 없으니,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거나, 오직 연봉 인상만이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만을 좇는 삶은 오래 버티기 어렵고, 마음은 점점 공허해집니다.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이 되며, 습관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을 형성합니다. 그래서 생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새로워지지 않은 생각은 자기중심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고집이 센 사람, 융통성이 없는 사람, 배타적인 사람의 특징은 대부분 ‘
경험이 부족하고, 사고의 폭이 좁다’는 것입니다. 사고의 폭이 좁으면 다양한 관점이나 변수를 고려하지 못하고, 결국 단순하고 편향적인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보지 않은 생각은 위험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제한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성령의 빛 가운데 서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제야 ‘
내가 옳다고 믿고 한 행동이,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한 것이었구나’ 하는 뼈아픈 자각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을 점검하도록 ‘
영적 경험’을 허락하십니다. 행동은 생각을 보여주는 거울이기에, 주님은 때로 우리를 특정 상황 속에 두셔서 ‘네 생각이 지금 올바른가?’를 보게 하십니다. 성령의 가르침은 이렇게 ‘경험’을 통해 옵니다. 말씀 속에서 깨달음이 오고, 그 깨달음이 생각을 바꾸고, 바뀐 생각이 행동과 습관을 바꾸어 결국 인격이 형성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격은 단순히 ‘착한 성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이 주도하시는 환경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환경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악한 영을 대적하고 거부하는 ‘
영적 전쟁’이 필요합니다. 사단은 유혹이라는 달콤한 미끼로 우리를 ‘하나님의 부르심과 상관없는 경험’ 속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그 미끼를 물면 우리의 생각은 사단의 생각으로 채워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자기 부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르심을 아는 것은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강력한 방패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즉, 하나님 안에서 ‘
내 몫’을 아는 것이 겸손이며, 그것이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길입니다. 이스라엘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 불린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령이 주시는 경험으로 생각을 고치지 않으면,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길은 주님이 주시는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말씀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하기 전에, 먼저 그 말씀 앞에서 ‘
내 생각이 얼마나 빗나가 있는지’를 성령의 빛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때로는 아프고 불편할 수 있지만, 바로 그 경험이 생각을 새롭게 하고, 새로워진 생각이 우리의 행동과 습관을 바꾸어 결국 그리스도의 인격을 이루게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경험의 학교로 부르십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생각을 고치고, 주님의 뜻에 합한 인격으로 자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격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