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아는 일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도서관에서 얻는 지식이나, 강의실에서 배우는 정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인격을 ‘경험’하는 일이며, 그분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의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성경을 읽고 신학 서적을 공부했다고 해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그분을 ‘체험’하고, 그 체험을 ‘묵상’하여 삶에 녹여낸 사람입니다.
성령께서는 바로 이런 영적 진리의 체득을 위해 우리를 다양한 삶의 현장으로 이끄십니다. 그것이 때로는 고난이고, 때로는 실패이며, 때로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아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서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가본 사람을 이긴다”는 속담은, 실제 경험 없는 판단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신앙의 이름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식으로 재단하고, 자신의 신념을 성경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그분과 동행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소망, 이익, 감정, 세계관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위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진짜 위험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영적 오만이며 영적 자기기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복해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갈 6:7, 약 1:22).
하나님은 이 자기기만에서 우리를 깨우기 위해, 성령을 통해 우리를 ‘경험’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때로는 실패를 통해, 때로는 고난을 통해, 때로는 깊은 침묵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게 하십니다. 이것은 인생의 고난이 단순히 우리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을 갖게 하기 위한 거룩한 훈련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종종 우리가 싫어하는 자리,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선지자들도 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은 고통과 순종 속에서 열립니다. 여호사밧 왕 시대에 활동하던 미가야 선지자는 왕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불편한 진실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로 미움을 받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시각을 얻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좁은 길이며, 고난의 길이며, 오해받는 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진리가 있으며, 영적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진 자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이것이 자연인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변화의 핵심입니다. 즉, 나는 죽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내 안에 사시는 것(갈 2:20)의 실현입니다.
이 시각의 전환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묵상’의 시간들을 필요로 한 합니다. 영적 묵상이란 단순히 조용히 앉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마음을 배워가는 ‘거룩한 내적 작업’입니다.
묵상 없는 신앙은 감정적이기 쉽고, 얄팍하며, 유행에 흔들립니다. 반면, 깊은 묵상은 신앙을 뿌리 깊은 나무처럼 만듭니다. 폭풍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이런 묵상의 삶에서 자라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고, 아버지께서 보시는 대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족도, 제자들도, 종교 지도자들도 그를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그 시각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길까지 감당하셨고, 그 길에서 하나님의 뜻은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은 종종 세상의 시각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을 따라 산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오해받고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며, 진리의 길입니다.
성숙한 영성은 하나님의 시각을 얻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나는 아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욕망, 나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의 본질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나아가야 할 여정입니다.
이 길은 고독하고 좁은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을지라도, 오직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길입니다(하박국 3:17~18). 그 길을 걷는 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자유와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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