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린도전서 3:10~15)
오래전 한 도예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평생 흙을 빚으며 살았는데,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가마 앞에서는 거짓말을 못 한다." 정성을 들인 것처럼 보이는 그릇도, 손질이 부족한 것도, 불 속에 들어가면 그 본질이 드러난다는 뜻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매끄럽고 단단해 보이던 그릇이 가마 속에서 금이 가거나 무너져 내리는 일은 흔했습니다. 불은 감추어진 것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견디지 못하는 것은 가차 없이 부숩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가마와 같습니다. 그 앞에서는 거짓이 없습니다. 인간의 공적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그 날에 밝히 드러납니다.
사람은 저울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합니다. 더 많이 헌신했는지, 더 오래 봉사했는지, 더 신실하게 살았는지를 견주는 일에 익숙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 저울은 자주 등장합니다. 새벽기도를 빠짐없이 나오는 사람과 주일 예배만 겨우 참석하는 사람, 십일조를 성실히 드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봉사의 자리에 늘 있는 사람과 그 자리를 피하는 사람, 우리는 그것을 보며 은연중에 점수를 매깁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을 그 저울 위에 올려놓고, 스스로를 향해 판결을 내립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러한 저울질로 무너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고 했고, 어떤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선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따르는 지도자의 권위와 업적을 자신의 신앙 자산처럼 여기는 태도였고, 그 자산의 크기를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는 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분쟁의 뿌리를 건드립니다. 문제는 누구를 따르느냐가 아니라, 인간의 공적 자체를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터를 다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재를 쌓아 올려도, 터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 집은 결국 무너집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건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터의 성격입니다. 터가 그리스도라면, 그 위에 세워지는 모든 것의 공로는 터에 있습니다. 건물을 세운 사람의 솜씨나 노력이 아니라, 터 자체가 그 집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 말합니다. 이 조심은 더 좋은 재료를 고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위에 세우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공적으로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한 가지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집니다. 나는 지금 그리스도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내가 그리스도 위에 무언가를 세웠다고 생각하는가?
바울은 말합니다. 어떤 이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세우고, 어떤 이는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불이 와서 각각의 공적을 시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그림이 떠오릅니다. '금과 보석은 불에도 끄떡없으니 상을 받고, 나무와 짚은 타 버리니 상을 못 받는다. 그러니 우리는 금과 보석 같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민수기 31장의 말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 은, 동, 철과 주석과 납 등 불에 견딜 만한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라, 그리하면 깨끗하려니와." 불에 견딜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도 불을 지나야 깨끗해진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불에 견디는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 하나님의 심판의 불 앞에서는 그 본질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심판의 불을 통과하여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정금이라도, 가마 안에서는 녹습니다. 하나님의 불 앞에서 금과 짚의 차이는 없습니다. 둘 다 타 버립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적을 금과 짚으로 나누어 그 가치를 구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불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심판과 저주의 존재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끗해지는가? 민수기는 말합니다. "불에 견디지 못할 모든 것은 물을 지나게 할 것이니라." 물을 지남으로써 정결하게 됩니다. 물은 세례를 상징힓니다. 그리고 세례는 죽음입니다. 죽음을 통과하는 방식으로만 깨끗함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죄인의 세례를 받으셨는가? 죄인의 운명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죽음을 실제로 통과하셨습니다. 세상의 죄를 지시고, 심판과 저주의 불을 온몸으로 받으시고, 그 죽음을 지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깨끗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그 죽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분의 죽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심판의 불 앞에서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공적이 불 앞에 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적이 우리를 대신하여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이것은 두 종류의 구원인 자랑스러운 구원과 부끄러운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이 어떤 성격의 구원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불 가운데서의 구원입니다. 마치 한밤중에 불이 난 집에서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사람처럼 손에 쥔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다만 살아 있을 뿐인 구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가 쌓은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살린 것은 우리의 공적이 아니라, 불 속으로 들어오신 그분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저울 위에 서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이 헌신했는지, 얼마나 더 신실하게 살았는지를 들고 나오지 않습니다. 불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에게는 자랑이 없습니다. 다만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뜻밖의 말을 힓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고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니,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행함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 헌신, 봉사, 전도, 그런 것들이 영광스러운 행함이고, 일상의 식사나 수면은 그저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구분을 허뭅니다.
왜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가?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 숨 쉬고 밥을 먹고 살아 있는 이 자체가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존재로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터로 하는 자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영광입니다.
이것이 자유입니다. 더 대단한 공적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에서의 자유, 다른 사람의 신앙 행위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책해야 하는 불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은혜 안에 있는 자는 그 자리에서 이미 충분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들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진 자들"(고전 1:2)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분쟁과 자랑과 다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리스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교회 됨은 여기에 있습니다. 더 많이 헌신한 사람도, 더 오래 믿은 사람도, 더 신실하게 산 사람도 따로 없습니다. 모두가 불 가운데서 건짐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자랑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나를 불 속에서 건져 내신 그 사람,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교회는 교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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