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16~17)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집을 지었습니다. 손수 기초를 놓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습니다. 수년의 땀과 정성이 담긴 집이었습니다. 집이 완성되던 날,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이 집은 네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도배를 다시 하고, 바닥을 갈아엎고, 벽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왜 그러느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집이니, 제가 더 좋게 만들어 드리려고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감사하다고 느꼈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서운함을 느꼈을까요?
우리는 신앙을 이야기할 때 습관적으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배를 드려야 한다, 기도를 해야 한다, 헌금을 해야 한다, 전도를 해야 한다. 물론 이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언제나 '내가'라는 데 있습니다. 신앙의 주어가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이 말을 처음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나처럼 부족하고 부끄러운 사람이?' 이 의구심이야말로 우리가 성전의 의미를 어디서 찾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성전다움의 근거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 가지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 왕은 웅장한 백향목 궁에 살면서 하나님의 궤가 아직도 휘장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나단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려야겠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심처럼 들립니까? 헌신적이고, 열정적이며, 경건하기까지 한 고백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짓겠다고? 아니다.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짓겠다"(삼하 7:11). 다윗의 선한 의도를 하나님은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방향을 완전히 뒤집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후에 스데반은 이 사건을 회고하며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행 7:48). 하나님은 사람의 손이 만든 공간에 붙잡히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스스로 지으신 집입니다. 그리고 그 집의 이름이 바로 교회, 곧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역사 속에 예루살렘 성전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비극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선언이었습니다. 돌로 지은 건물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생각, 특정 장소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 정해진 날에 제사장을 통해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을 성전의 붕괴와 함께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마치 비계와 같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비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건물이 완성되면 비계는 철거됩니다. 철거된다고 해서 비계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계가 제 역할을 다 했기 때문에 철거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 제도, 제사 규례, 제사장 제도는 바로 그 비계였습니다. 참된 성전이신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하나님이 세우신 임시 구조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그 비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너희가 충분히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어 손수 지으신 집이다"라는 뜻입니다. 성전의 거룩함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도덕적 수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을 지으신 분의 거룩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결코 흠 없는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분쟁이 있었고, 음행이 있었고, 서로 파당을 지어 바울파니 아볼로파니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들을 성전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 3:17)는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이렇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을 더럽히지 말아야겠다. 더 거룩하게 살아야겠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바르게 행동해야겠다.' 그런데 바울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반응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성전을 사람의 손으로 유지하고 보수하려는 시도, 그것이 곧 성전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마치 오래된 명화 위에 초보 화가가 자기 붓질을 덧칠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한 의도로 행했다 해도, 그 행위 자체가 원작을 훼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심고 물 주는 일을 했고, 아볼로도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강조한 것은 심고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고전 3:7). 그들이 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결코 성전을 세우는 능력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바울과 아볼로라는 사람들을 추종하면서, 마치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는 주체인 것처럼 생각한 데 있었습니다. 사람을 높이고 사람에게 의존하는 순간, 하나님이 지으신 성전의 영광은 가려지게 됩니다.
어느 산골 마을에 오래된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 우물은 마을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함께 사용해 온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우물을 보더니 말했습니다. "우물이 너무 낡았으니 내가 새로 만들겠다." 그는 그 자리를 파헤치고 콘크리트를 부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파헤친 것은 우물의 외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맥이 막혀버린 것이었습니다.
성전의 거룩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거룩함을 만들어 내려 할 때, 오히려 하나님이 흐르게 하시는 생명의 통로가 막혀버립니다. 성전다움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전을 세우신 하나님이 유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설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바라보면서, 그 길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이끄시는 길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화려한 계획이 아니라 단순한 신뢰,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조용한 감사, 자기를 증명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이 성전답게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31).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내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것이 성전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자기 계발의 언어로 이해합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도구, 더 복된 삶을 위한 방법, 더 의로운 자신을 만들기 위한 훈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성전의 언어는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훌륭한 집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이 보잘것없는 나를 집으로 삼으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우신가를 말하는 언어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당신의 노력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거룩함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어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 성령이 거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만이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전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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