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린도전서 3:18)
어떤 사람이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이 깊어졌어.” “나는 유명한 신학자 책을 많이 읽어서 복음을 잘 알아.” 그의 말에는 틀린 부분이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성경 지식도 풍부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도 잘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안에 작은 갈등이 생겼습니다. 누가 더 옳은지, 어떤 가르침이 더 수준 높은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따르는 쪽에 섰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저 사람들보다 복음을 더 제대로 알고 있어.’ 그 순간, 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이미 가장 깊은 속임 속에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신앙은 종교와 다릅니다. 종교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유지하고, 내가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은 다릅니다. 신앙은 내가 주체가 아닙니다. 마치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혹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는 사람처럼, 성도는 자신이 어떤 힘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인생을 완전히 자기 뜻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혀 원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무너지고, 예상하지 못했던 말씀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왜 나는 이 길로 오게 되었지?” “왜 이 말씀이 나를 이렇게 붙드는 거지?” 그때 비로소 깨닫습니다. ‘내가 살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이끌어 오셨구나.’ 이 깨달음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말만 그럴듯할 뿐 실제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 나는 부득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 고백은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바울에게 복음 전파는 ‘내가 결단해서 이룬 위대한 업적’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신 분이 하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떤 화가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립니다. 붓이 말합니다. “이 그림은 내가 그렸어.” 그 말은 맞을까요? 붓은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들린 하나의 도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높일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을 특별히 추종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도 처음에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배웠다.” “나는 아볼로에게 배웠다.” “나는 게바에게 속했다.” 그들은 복음을 말했지만, 사실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명문 학교를 자랑하는 것처럼, 유명한 스승을 내세우는 것처럼, 신앙마저 ‘소유물’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분열이었습니다.
왜그럴까요? 겉으로는 사람을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서 일하신다면, 누가 전했든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만이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못할 때, 사람을 붙잡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고린도 교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좋은ㅋ 교회를 다니니까 괜찮다.” “나는 복음을 제대로 배웠다.” “나는 저 사람들보다 더 바른 신앙을 가졌다.” 하지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우리는 자신을 속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은 이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멸망 받아야 할 존재다.” 그 외의 모든 ‘나는 괜찮다’, ‘나는 안다’, ‘나는 낫다’는 생각은
십자가 앞에서 무너져야 할 것들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이 말은 역설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신앙의 핵심입니다. 복음을 많이 안다고 해서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을 알수록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어리석다.” 이 고백이 있을 때, 사람을 나누지 않게 됩니다. 우열을 따지지 않게 됩니다. 분파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비로소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백으로 함께 서게 됩니다.
어느 날, 처음에 등장했던 그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안다’는 생각에 붙들려 있었는지, 얼마나 사람을 통해 자신을 높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배웠다.” “나는 이것을 안다.” 대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다만,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은혜만 압니다.”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졌습니다.
성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붙들린 사람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도 아닙니다. 다만 복음에 의해 무너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높일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 자신도 아닙니다. 오직,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삶을 붙들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세뿐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이 말씀은 우리를 낮추기 위한 말이 아니라, 참된 자유로 이끄는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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