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고린도전서 3:1~4)
어느 주일 아침, 교회 앞을 지나가다 문득 이런 대화를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정말 좋은 교회예요. 목사님 설교도 은혜롭고, 성도들도 열심히 봉사하고..."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오래전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으로 제 신앙의 옳음을 증명하려 했던 그 시절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좋은 교회를 찾는 이유가 순수하게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나는 좋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야"라는 자존심이 숨어 있습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에 속함으로써 내 가치가 올라간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파"라며 자기가 따르는 사람의 인기와 명성에 자신을 기대려 했습니다. 마치 유명한 연예인의 팬클럽에 속한 것처럼, 그 사람의 가치가 곧 내 가치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신에 속한"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혼란스러워집니다. '육신에 속했다면 구원받지 못한 것 아닌가? 그럼 고린도 교회는 교회가 아니란 말인가?'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자기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희생과 사랑은 생각지 않고, 자기가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합니다.
제 아들이 어렸을 때가 생각납니다. 밤새 아파하는 아이를 돌보며 잠 못 이루던 날들, 아이는 그런 부모의 수고는 모른 채 아침에 일어나 "엄마 배고파"만 외쳤지요. 미워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 그때 힘드셨죠?"라고 말할 때,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뭘 해야 하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신자가 되지?"만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바울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초보 신앙과 고급 신앙으로 구분하여 이해합니다. 하지만 복음에 수준의 차이가 있을까요? 복음은 복음입니다. 십자가는 십자가입니다. 거기에 초급도 고급도 없습니다. 다만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가 어린아이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도 많고 성령 체험도 풍성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바울은 그들을 책망했을까요? 그들이 그 모든 은사와 체험을 자랑하고, 서로 비교하고, 자기를 높이는 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완성된 은혜는 잊은 채 말입니다.
"그럼 이제부터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다짐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닙니다. 그것 역시 육신의 생각입니다. '내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여전히 자기 중심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할까요?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바울 자신도 "내게 선을 행하는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절망의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해방의 선언입니다. '내가 뭔가 해서 의로워지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니, 이제 십자가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육의 모습이 나타나도
신앙생활을 오래 한다고 육의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여전히 제 안에서 교만과 비교의식과 자기 의가 고개를 듭니다.
어제도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순간 시기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여전히 어린아이구나. 십자가의 완성된 은혜보다 세상의 인정을 더 갈망하고 있구나.'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발견했을 때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이 십자가로 돌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내 안에는 정말 선한 것이 없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구나.'
십자가는 완성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그곳에서 이미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우리가 거룩한 성도가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더 나은 성도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어진 완성된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육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래서 더욱 십자가가 필요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좋은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좋은 성도가 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다만 십자가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이 흘리신 그 피의 존귀함에 온 마음을 둡니다. 그것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자꾸 무엇인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로 모든 것이 주어졌음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사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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