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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속으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빛의 세계를 향한 외침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11.

요한복음 1장 19~28절

19유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지파 사람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그 때에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였다.
20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오" 하고 그는 고백하였다.
21그들이 다시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예언자요?" 하고 그들이 물으니, 요한은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22그래서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23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24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26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27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28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 이 한 마디가 복음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누구도 아닌 ‘소리’였습니다. 메시지를 담는 그릇일 뿐, 자신을 나타내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지우고, 오직 오실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준비하는 ‘도구’로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요한의 입에서 나오는 간결한 ‘
아니오’는, 단순한 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둠에 속한 자들의 질문이 빛에 대한 무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너는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 그들의 질문 속에는 메시아에 대한 오해, 신앙에 대한 왜곡, 구원에 대한 인간적 기대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정치적 혁명가로, ‘엘리야’를 기적의 사람으로, ‘그 선지자’를 새 모세로 기대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닌 ‘자기’였습니다.

그에 비해 요한은 자신을 이사야 40장에 예언된 "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증언합니다. 그는 메시야도, 엘리야도, 예언자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니라, ‘오실 그분’입니다. 요한의 사역은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은 두 세계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어둠에 속한 이들이 가진 종교적 호기심, 형식적인 질문, 자신들의 시스템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메시아상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에 속한 요한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언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
너희가 알지 못하는 이가 너희 가운데 서 있다”고 말합니다. 즉, 어둠의 세계는 빛이신 그리스도가 임해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빛을 ‘관찰’(觀)하지 않고, 단지 ‘보고’(見)만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에서 소개된 ‘
문(聞)’과 ‘청(聽)’의 구별은 신앙생활에서 너무도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문(聞)은 그냥 들리는 소리, 흘려버리는 정보이고, 청(聽)은 귀를 기울여 마음으로 받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聽)’하는 사람은 회개하게 됩니다. 죄를 자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를 ‘경청’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만을 높이게 됩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에서 말한 엘리야의 사역을 예표합니다. 말라기서에서 예언한 ‘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는’ 사역은,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이루실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준비자로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런 메시아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보다는 정치적 회복, 죄 씻음보다는 민족의 영광을 원했습니다. 그들의 세례는 외적인 정결예식에 불과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었지만, 그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빛의 세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진짜 엘리야는 누구인가? 주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다”고 하시며,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임을 밝혀 주십니다. 세례 요한의 엘리야 사역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 엘리야의 사역은 이제 성도들에게 위임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사역 이것이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두 종류의 사람을 보여줍니다. 사람이 보낸 사람들은 질문은 많으나 이해는 없습니다. 종교적인 틀 안에서만 판단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 요한은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입니다. 당신은 어느 부류입니까? 혹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
문(聞)’하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행복, 내 성공, 내 문제 해결만을 바라는 어두움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빛의 세계에 들어온 사람은 다릅니다. 고난 앞에서도 좌절이 아닌 은혜를 봅니다.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합니다. 광야의 소리를 듣는 자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됩니다. 그는 세상의 질투와 욕망 속에서 다른 길을 걷습니다. 힘의 논리가 아닌 십자가의 논리로 삽니다. 이 땅에서 어리석고 손해 보는 것처럼 보여도, 영원한 영광과 안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관(觀)하고 있으며, 무엇을 청(聽)하고 있습니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 속에서 그 빛을 반사해내는 성도의 삶을 사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오신 길을 닦은 요한처럼, 당신의 삶도 누군가에게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소리가 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