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복음 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절은 성경 전체의 심장을 꿰뚫는 진술이며, 복음의 본질을 가장 깊게 밝혀주는 선언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마가복음은 고난받는 종으로, 누가복음은 인자로서의 완전한 인간 예수님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태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빛과 생명, 말씀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 이전의 시점부터 증거합니다. 이는 단순한 인간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라는 신비한 사건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새 창조로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태초에’는 창세기 1장의 선언과 같습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하지만, 요한복음은 그 창조 이전에 “말씀”이 계셨다고 선포합니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고, 만물을 지으신 창조의 주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위에 말씀으로 질서를 부으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그것으로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물질적 세계의 시작이 아니라, 죄와 어둠으로 가득 찬 인간 심령에 비춰지는 ‘생명의 빛’이요, 하나님의 구속의 시작을 암시합니다. 요한은 이 창조의 순간을 기억하며, 예수님 안에서 시작된 새 창조의 서사를 펼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빛은 단순한 지식이나 도덕의 상징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십니다.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그 빛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이미 어둠에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둠에 젖은 사람은 빛을 두려워하고, 빛을 거부하고, 심지어 빛을 죽이려 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사건의 절정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십자가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해 쏟아부으신 심판의 물, 그리고 생명의 빛입니다.
요한복음은 창세기의 창조 순서를 따라 진행되는 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날 빛이 비추고, 둘째 날 물이 나뉘며, 이는 곧 세례와 구원에 대한 예표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죄 없는 분이 죄인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짊어지신 사건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으시며 예수님은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 곧 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감당하십니다.
이후 요한복음의 일곱 표적은 새 창조의 7일처럼 배열됩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고, 병자가 치유되며,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모든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이 다시 살아나는 구원의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 표적의 종착지는 십자가와 부활이며, 이는 옛 창조의 완성일인 안식일을 지나 새 창조의 첫날, 즉 부활의 날로 이어집니다.
요한복음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요한복음의 핵심 키워드는 ‘예수’, ‘믿음’, ‘생명’입니다. 이 세 단어는 서로를 규정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을 얻었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참된 믿음의 열매입니다.
이 생명은 단지 죽지 않는 영생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삶,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의 새 생명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죄와 정죄에서 해방된 존재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복음적 삶입니다.
태초에 계셨던 그 말씀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 빛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어둠을 향해 비추고 있습니다. 이 빛은 단지 외적인 윤리나 이성이 아닙니다. 죄로 죽어가는 영혼을 소생시키는 하나님의 생명력입니다.
이 빛 앞에서 당신의 심령을 들여다보십시오. 그 빛은 드러내고 찌르고 고발하지만, 동시에 살리고 위로하고 다시 세우십니다.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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