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으나 합당하지 아니하더라.”(마태복음 22:8)
예수님의 혼인잔치 비유는 단순한 초대장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피 묻은 초청장입니다. 그것은 살과 피로 잉크를 삼아, 포도즙 틀에서 짓밟힌 구속주의 발자국으로 도장을 찍은 하늘의 전쟁서신입니다. 그 전쟁은 세상을 향한 것도, 단지 사탄을 향한 것도 아닙니다. 그 전쟁은 우리의 자아를 향한 것, 곧 '나'라는 옛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침공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는 단순한 메시아 도래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귀는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였습니다. 스가랴서 9장의 예언에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단어를 덧붙이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는 민족 해방의 전사였고, 정치적 권세자였으며, 다윗의 칼을 휘두를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타신 나귀는 멍에를 메는 자, 곧 종이고, 죽음을 향한 길의 안내자였습니다.
그 나귀 위에 제자들의 옷이 깔리고, 그 위에 예수님이 타십니다. 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나귀–제자–예수님의 결합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죽음으로 묶인 연합의 표입니다. 창세기 49장의 유다에 대한 야곱의 유언이 여기서 되살아납니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포도나무 가지에 매며…”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요 15:1). 나귀는 겸손과 연약함의 상징이며, 그 나귀와 묶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피 흘림의 자리로 내어주십니다. 그런데 그 묶임은 단지 예수님의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암나귀 새끼는 곧 신부된 교회, 곧 성도의 상징입니다. 그녀도 포도나무 가지에 묶입니다. 곧, 성도는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매여지고, 그 피에 적셔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63장의 말씀은 이 피의 진실을 드러냅니다. “내 옷이 포도즙 틀을 밟은 자 같이 붉으니라.” 누구의 피인가요? 바로 자기 자신을 짓밟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해(自害)이며, 죄에 대한 진노를 스스로에게 쏟아부으신 구속의 심판입니다. 그리고 그 피에 젖은 옷을 입고, 예수님은 백마를 타고 하늘 군대를 이끌고 계시록 19장에서 재림하십니다.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수렴됩니다. 그것은 자기부인의 전쟁입니다. 예수님의 전쟁은 로마가 아니라, 내 안의 로마, 내 안의 세상, 내 안의 아담, 내 안의 죄를 향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영적 전쟁도 바깥에 있는 허깨비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옛 사람과의 전쟁인 것입니다1.
교회는 바로 이 자기부인의 전쟁에 참전한 하나님의 군대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포도나무에 묶인 암나귀 새끼입니다. 성도는 그 전쟁을 통해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를 덜어냄으로 예수로 채워지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는 도덕적 완벽함이나 선행의 업적이 아니라, 자기를 비워냄으로 주님의 형상을 이뤄가는 은혜의 실재화입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자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의 아들의 잔치, 곧 십자가의 잔치, 자기부인의 잔치, 자기 죽음의 축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밭으로 가고, 사업으로 갔으며, 종을 죽였습니다. 곧 자기 세계에 몰입하고, 자기 욕망을 위해 하나님의 초대를 짓밟은 자들이었습니다.
왕은 그들을 불태우고, 길거리로 나가 누구든 불러오게 합니다. 하지만 초청받아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도, 혼인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습니다. 그는 쫓겨납니다. 이 혼인예복은 무엇일까요? 도덕성인가? 신앙의 언어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만이 예복을 입은 자입니다. 자기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의로움으로 자신을 덮은 자입니다. 자기의 뜻과 자존과 계획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의 겸손한 나귀됨에 묶인 자만이 혼인잔치에 합당한 자인 것입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은혜의 비선택이 아닌, 은혜의 폭력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용히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십자가로 묶어 끌고 가십니다. 성도는 자발적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구속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예정이고, 은혜는 편애이고, 진리는 전쟁이며, 믿음은 자기부인인 것입니다.
“부름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피 묻은 잔치의 초청장이 우리 앞에 도달했습니다. 당신은 그 혼인잔치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나요? 당신은 예복을 입었습니까? 당신의 옛 자아는 포도즙 틀에서 밟혔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왕의 초대를 자신의 사업과 밭의 일로 밀쳐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멍에 매는 나귀를 타고 간다. 너는 나와 함께 그 멍에를 매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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