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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왜 양으로 보내시는가? – 이리들의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법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10.

세상은 치열한 경쟁의 전쟁터입니다. 자본주의의 이리 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날마다 싸웁니다. 더 나은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 모두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앞서 가려는 사회 속에, 예수님은 우리를 양으로 보내십니다. 왜일까요?

양은 세상에서 가장 무기 없는 짐승입니다. 코에 파리가 알을 낳아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이며, 목자가 없으면 길을 잃습니다. 무력하고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양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이리들 사이로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이리처럼 싸워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뒤를 따라가며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
비전'을 말하지 않습니다. 양은 미래의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 이 순간, 목자가 어디로 가는지만 보고 따를 뿐입니다. 세상은 야망과 목표를 강조합니다. "Be ambitious!" 라며 젊은이들에게 꿈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뱀의 지혜입니다. 피조물로 하여금 스스로 창조주가 되게 하려는, 하나님 자리를 넘보게 하는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양으로 보낸다"고 하시며, 동시에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곧 "이리처럼 되지 말고, 뱀의 유혹을 알고도 그 유혹 위에 서라"는 것입니다.

뱀의 지혜는 하와를 속여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지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게 했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로 가시와 엉겅퀴, 고통과 죽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뱀처럼 지혜롭다'는 말은, 그 유혹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 분별력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피조물로서의 자리를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또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노아의 방주에서 비둘기는 물 위에서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죽은 시체 위에 앉아 배불리 먹고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비둘기는 더러운 데에 앉지 않습니다. 이것이 비둘기의 순결입니다. 세상의 더러움에 만족하지 않고, 주인이 부르는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의 방식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리로 변해서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양으로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할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자는 이 세상의 풍요나 성취로 우리를 이끄는 분이 아니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목자의 인도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 더 편한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아니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신데 왜 이렇게 부족한 게 많냐”는 불평이 흘러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이미 이리, 사자, 호랑이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은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목자와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기를 원하고, 힘을 원하고, 높은 자리를 원합니다. 그러니 목자의 인도는 우리에게 갑갑하고,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양으로, 끝까지 양으로 살아가라.” 비록 이리들이 너희를 물어뜯고, 세상이 너희를 미련하게 여기고, 때로 손해만 보는 인생 같아 보여도, 그 길이 곧 생명의 길이고, 그 길 끝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너무도 많은 길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진리로 착각하고 살아가기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길 없다. 나만이 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자기 길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진짜 길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가 쌓은 바벨탑을 허물고, 우리가 쥐고 있던 소망을 부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진짜 생명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예수가 진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며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이 있습니다.
‘옛 사람의 죽음’입니다.

출애굽한 60만 명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 후의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옛 사람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도록 하십니다. 죽어야 합니다. 무너져야 합니다. 비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양이 되어야 합니다. 양으로 보내셨다면, 끝까지 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

어느 목동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산에서 양을 치는데, 양 중 하나가 낭떠러지 근처에 가 있다가 미끄러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죽지 않고, 낭떠러지 아래 작은 바위턱 위에 걸렸는데, 목동은 즉시 구조하지 않고 사흘을 기다렸습니다. 이유는 양이 아직도 스스로 몸부림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이 완전히 지쳐야만 목동이 내려가 구조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함께 떨어져 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양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 한복판, 즉 이리의 틈바구니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바로 그 말씀의 길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우리가 양의 자리에서 내려와 호랑이나 사자로 ‘
진화’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양으로 살아라.” 왜냐하면 주님의 능력은 양의 무력함 속에서만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고후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