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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판단, 그리고 선한 행함의 본질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9.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로마서 2:6~11)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유대인들을 향해, 보다 정확히는 유대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을 향해 매우 강력하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롬 2:1). 그가 지적하는 핵심은, 단지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 ‘남을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죄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
판단’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분별력이 아닙니다. 이는 타인을 정죄하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며, 자기 의로 다른 이들을 내려다보는 유대주의적 판단입니다. 율법의 외적 행위에 따라 의롭고 불의함을 가르고, 자신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대에 앉은 자처럼 굴면서도 실상은 그와 똑같은 죄를 범하고 있는, 위선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2장 5절에서 이러한 외식적 판단이 하나님의 진노를 스스로 쌓는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6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롬 2:6) 이 말은 표면적으로 보면 ‘권선징악’의 원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문맥을 살펴보면, 이 말은 단순한 도덕 교훈이나 종교적 권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렇게 보이는 행위로 남을 정죄하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서 너희는 어떤 행함을 하고 있느냐”는 깊은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선한 행함이란 무엇일까요? 바울은 7절과 8절에서 ‘
선한 행함’과 ‘악한 행함’을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선한 행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한 일이나 도덕적 선행이 아닙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롬 2:7)

참고”, 즉 헬라어 ‘카스 휘포모넨’은 지속적이고 끊이지 않는 인내를 의미합니다. 이 인내는 인간의 의지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예수님의 완전한 인내, 일절 끝까지 참으시는 그분의 순종, 그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인내의 본체입니다. 다시 말해, 영생을 보응으로 받는 선한 행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와 은혜 안에서 드러나는 믿음의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이 땅의 명예나 성공이 아닙니다. 바울은 참된 선을 행하는 자들이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한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성경 전반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과 사역을 나타냅니다.

영광(독사)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을 입고 나타난 그 형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존귀(티메)는 대가, 지불된 값으로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몸값을 치르신 희생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썩지 아니함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십니다.

이 세 가지를 구하는 것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갈망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땅의 것, 썩어 없어질 외적인 영광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생명의 주님을 향한 믿음이 바로 성도의 선한 행함의 실체입니다.

그 선한 행함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착한 일’(에르곤 아가돈)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도덕적 행위가 아닙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 성도 안에서 시작하신 새 창조의 일입니다. 구약의 창조 기사에서 반복되던 “보시기에 좋았더라(토브)”라는 하나님의 선언처럼, 성도 안에서 ‘선한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시작하실 수 있는 창조 사역입니다.

우리는 의지로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선을 선택하는 자유조차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와 희생, 그리고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
착한 일’을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행함의 열매가 믿음이며, 그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선한 행함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자는 믿음을 모르는 자입니다. 결국 바울은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의 인내로 은혜를 입은 자라면, 어떻게 타인을 정죄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외모로나 행위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 또한 오직 예수의 공로로만 의롭다 하심을 입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선한 행함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로마서 2장은 외식하는 유대주의를 향한 경고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너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냐? 너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는 자냐?

그렇다면, 그 믿음의 열매로서 남을 판단하기보다는 긍휼히 여기며, 예수의 인내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참된 선한 행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열매이며, 그 열매는 반드시 겸손과 인내, 그리고 긍휼로 나타납니다.

주님, 내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내 안에 아무런 선이 없음을 알고, 오직 예수님의 인내와 순종으로 인해 내가 구원받았음을 믿습니다. 그러니 주여, 나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받은 믿음으로, 선한 행함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하소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 곧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