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창세기 14:20~23)
아브라함은 그날,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상대는 이미 가나안 전역을 짓밟고 돌아가던 동방의 연합군이었습니다. 거인 족속들이 무너졌고, 강한 왕들이 흩어졌으며, 소돔과 고모라는 속절없이 패배했습니다. 그들의 행렬은 승리의 노래와 전리품, 그리고 포로들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 군대를 향해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른 사병 삼백열여덟 명을 데리고 출격했습니다.
이것은 용기라기보다 무모함에 가까웠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믿음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을 떠났습니다. 더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했고, 더 안전해 보이는 도시를 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선택을 말리지 않았고, 말리지 못한 만큼 마음에 남은 서운함도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롯이 사로잡혀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산했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잃을 것도 없습니다. 나서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계산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출격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자주 아브라함의 용맹을 떠올리지만, 성경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길 수 없기에,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출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닮아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패배의 길이었고, 약함의 선택이었으며, 손해를 자청하는 행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승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인간의 강함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술에서, 삼백 명의 군사에서, 목동 소년의 손에서 하나님의 승리가 드러납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돌아오며 두 왕을 만납니다. 한 왕은 소돔의 왕이었습니다. 금과 은, 전리품을 내밀며 말합니다. “사람만 내게 돌려주시오. 물건은 다 가지시오.” 또 다른 왕은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조건도, 요구도 없이 떡과 포도주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승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소돔 왕의 손을 밀어내고,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를 받습니다. 그는 전리품이 나를 강하게 만들 수 있지만, 떡과 포도주는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선택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의 힘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붙드는 분별력, 성공보다 순종을, 결과보다 관계를 선택하는 용기,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섭니다. 우리의 전쟁은 눈에 보이는 적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안에 깊이 자리한 죄의 습관, 자기 방어, 통제하려는 욕망, 인정받고자 하는 집착과의 싸움입니다. 그 싸움은 언제나 우리보다 크고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십자가에서 결판이 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이 되셔서 사망을 삼키셨습니다. 우리는 그 승리 안으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이상한 것입니다.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긴 싸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납니다. 패배처럼 보이는 순간조차 승리를 향한 과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출격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소돔의 전리품인가, 멜기세덱의 떡과 포도주인가? 교회여, 세상을 향해 출격하라. 그러나 세상을 이기려 하지 말고, 십자가를 닮으라. 강해지려 애쓰기보다, 약함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라."
그 출격의 끝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었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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