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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으라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8.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세기 13:3~4)

가나안에 들어선 아브라함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
그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땅에서 그가 처음 맞이한 현실은 기근, 즉 굶주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형통만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자리에서도 기근은 올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기근은 하나님이 우리를 약속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는 과정일 때가 더 많습니다.

왜 약속의 땅에서 기근이 오는가?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들어오자마자 시련을 만났습니다. 겉으로 보면 불행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 기근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
너는 지금 무엇을 의지하느냐?” 기근은 우리의 신앙을 드러냅니다. 평탄할 때는 누구나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근이 오면 우리가 붙들고 있던 의지처들이 하나씩 무너집니다. 그때 드러나는 것이 ‘진짜 우리’입니다.

아브라함은 기근 앞에서 흔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그도 상황이 두려우면 하나님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이 점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성경의 믿음의 인물들은 처음부터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시험, 두려움, 실패를 지나며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하려 애굽으로 “
내려갔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에서 “내려갔다”는 표현은 종종 믿음의 하락, 자기 의지로 결정함을 상징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기가 위험하니 더 풍요로운 곳으로 가야겠다”는 인간적인 판단을 따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애굽에 들어서면서 한 ‘계산된 선택’이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야 내가 안전할 것이오.

사라를 희생시키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선택, 아브라함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우리도 두려움 앞에서 때때로 사랑보다 생존을, 순종보다 체면과 이익을 우선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향하는 아브라함의 발걸음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쉽게 더 안전해 보이는 선택, 더 편해 보이는 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결정, 하나님 없이도 당장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을 택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늘 ‘
내려가는 길’입니다.

애굽에서의 아브라함의 선택은 명백한 실패였습니다. 그는 약속의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실패의 자리에서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셔서 사라를 보호하시고, 아브라함을 다시 돌려보내셨습니다.

왜일까요? 아브라함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
약속’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보다 약속을 더 크게 보십니다. 우리는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향해 우리를 이끄십니다. 이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봅니다. 인간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약속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실수했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실패는 하나님의 손에서 회복의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애굽에서 나온 아브라함은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전에 제단을 쌓았던 곳, 벧엘, “
하나님의 집”에 돌아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했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핵심입니다. 인간은 실패해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벧엘로 “
올라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믿음은 언제나 올라가는 길이며, 자기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쓰러졌을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고상한 결심이 아닙니다. 단을 쌓는 것, 즉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을 만듭니다. 회개의 제단에서 우리의 마음은 다시 정렬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신앙의 길은 ‘
점찍듯’ 쌓아가는 순종의 여정입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에 등장하는 세겜, 벧엘, 헤브론은 단순한 지명이 아닙니다. 그의 생애에 찍혀 있는 ‘신앙의 점’들입니다. 신학적으로, 아브라함이 점찍으며 쌓은 단은 후대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중요한 거점이 됩니다. 그리고 더 깊은 의미에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교회와 성도의 삶 속에서 그 정복이 계속됩니다. 아브라함, 이스라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교회(우리) 하나님나라의 확장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을 점찍듯 세워 세상의 땅을 하나님나라로 바꾸어 가십니다.

그러나 성도의 삶 속에서 그 순종이 더딜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때로 묻습니다. “
나는 왜 여전히 이 모양일까?” “하나님나라의 삶은 왜 이렇게 느린가?” “내 안에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어떤가?” 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완성하신다.(빌 1:6)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하나가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의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이방인 하나가 무엇을 하겠냐고.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작은 한 사람을 통해 그 땅 전체를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미약해도,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언은 반드시 현실이 됩니다.

신앙의 길은 언제나 벧엘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는 것입니다. 그곳이 회복의 출발점이고, 새로운 순종의 출발선입니다.

"주님, 우리의 시선이 상황이 아니라 주님께 고정되게 하옵소서. 기근 속에서도 애굽이 아니라 벧엘로 향하게 하시고, 우리의 실패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옵소서. 다시 단을 쌓는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새롭게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