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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아브라함의 땅,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삶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17.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 본토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신비롭습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한 음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떠나라.” 그는 평생 살아온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떤 땅으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으셨고, 그곳이 어떤 모습일지 그려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땅으로 가면 된다는 말씀뿐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비슷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 우리가 익숙하게 붙들고 살아온 삶의 방식, 안전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을 떠나 "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삶"으로 걸어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내 안의 연약함이 너무 뚜렷하고, 미성숙함이 반복되고, 세상에 찌든 내 모습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이끈 것은 그의 성품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신실함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오히려 실수와 두려움, 그리고 크지 않은 인간적인 용기뿐이었습니다.

진짜 주인공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도의 삶은 본질적으로 “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절망 대신 소망을 배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땅, 민족(자손), 복의 근원됨, 이 세 가지는 정확히 ‘
한 나라’를 구성하는 세 요소, 즉 영토, 국민, 주권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한 나라의 탄생 이야기였습니다. 그 나라는 단지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이 즉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소유한 땅은 결국 막벨라 굴 하나였습니다. 아들과 자손은 단 하나, 이삭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에게 땅을 주신 걸까? 정말 큰 민족이 되게 하신 걸까?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같은 약속을 반복하셨습니다. “
내가 네게 땅을 주겠다. 너의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 반대였습니다. 이삭에게도 두 아들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에 정착하기는커녕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결국 가나안을 잃고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은 걸까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그 약속이 가리키는 땅이 처음부터 가나안 땅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
잠시’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땅을 빼앗기거나 떠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한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진짜 땅은 이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은 ‘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시편 37편은 말합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리라.” “의인이 땅에 영원히 거하리라.” 그러나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은 역사적 가나안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분명하게 정의합니다.
“우리는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또 계시록은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고…”(계 21:1) 아브라함은 일평생 그 땅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바란 것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 즉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도시였다.” 아브라함의 눈은 가나안 땅을 넘어 있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땅”을 기다렸습니다.

야베스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 우리는 종종 이 기도를 물질적 확장이나 성공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언약과 연결해 보면 야베스의 기도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됩니다. 야베스가 구한 것은 더 넓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이 넓어지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었습니다.

성도의 지경은 사업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의 영토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관계와 삶, 결정과 가치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더 깊어지는 것, 그것이 진짜 “
지경 확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경의 마지막 완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
아,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나라는 이 땅이 아니구나.” 우리의 걸음도 그렇습니다. 현실은 때로 약속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기도한 방향과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고, 약속이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삶이 흔들리고 지치고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말합니다.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단지 성취의 장소가 이 땅이 아닐 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보여 줄 땅을 향해 걸어가거라.” 그 땅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나라, 하늘의 본향,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향해 걷는 동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조금씩 하나님의 통치가 깊어지고 넓어지며 확장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성취되고 있고, 마지막 날 완성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나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땅,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우리의 마음의 지경을 넓히시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의 이야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