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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누구의 이름을 위해 사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27.

“자, 우리가 성읍과 탑을 쌓아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세기 11:4)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면
‘나도 의미 있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이룬 일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성경은 바로 그 마음 속에 인간의 근본적인 타락의 씨앗이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죄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흐름처럼 이어집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스스로의 왕이 되려 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의 첫 죄였습니다. 그 죄의 DNA는 가인에게 이어졌습니다. 가인은 동생을 죽였고, 자기 힘으로 도시를 세웠습니다. 라멕은 폭력과 복수를 자랑했고, 네피림과 니므롯은 ‘세상 영웅’으로 군림하며 힘과 권세로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자기신격화의 정신이 바벨탑으로 완성됩니다. “자, 우리가 성읍과 탑을 쌓아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자.”(창11:4)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시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바벨탑은 그 교만의 집약체였습니다.

하늘에 닿겠다’는 말은 단순히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자신들이 왕이 되고자 한 선언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의존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스스로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그 불안을 숨기려 더 높은 탑을 쌓습니다. 더 많은 재산, 더 큰 명예, 더 높은 지위… 그 모든 것은 사실상 ‘하늘에 닿으려는’ 현대식 바벨탑입니다.

하나님 없이 높아지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 안에서만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높아진 인간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이름을 내자.” 이 한 문장이 바벨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어로
웨나아세 라누 쉠 직역하면 “우리 자신을 위해 이름을 만들자”는 뜻입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자녀’, ‘그분의 형상’이라는 이름으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이름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보다 자기 이름이 더 크고 영광스럽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의 나라’를 세우려 합니다.

성경은 이런 시도를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사울은 승리 후에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습니다. 압살롬은 자기 이름으로 기념비를 세워 후세에 기억되길 바랐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보다 ‘
자기 이름’을 더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창12:2)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이름을 버리고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이름을 만든 사람들’(바벨)과 ‘하나님이 이름을 주신 사람’(아브라함). 이 둘의 대조는 인간의 존재 방향을 결정짓는 영적 갈림길입니다.

바벨의 사람들: “
우리 이름을 내자.." 아브라함: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자기 힘으로 높아지려는 사람과 하나님이 높이시는 사람. 진짜 영광은 내가 쌓는 탑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이름 안에 있습니다. “그 이기는 자에게 내 새 이름을 그 위에 쓰리라.”(계3:12)

바벨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가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이 말은 단순히 모여 살자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는 명령을 고의로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흩어지기보다, 자기 중심의 질서와 통일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 안에도 이런 바벨적 연합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
하나됨’을 말하지만, 실상은 하나님 없는 인간 중심의 통일일 때가 많습니다. 조직과 힘, 규모로 하나 되려 하지만,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바벨의 연합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참된 하나됨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는 말씀처럼,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연합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리 되시고, 각 지체가 그분께 순종할 때만 가능한 하나됨입니다. 하나님 없는 연합은 바벨이고, 하나님 안의 연합은 교회입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벨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사역을 해도, 봉사를 해도, 헌신을 해도 그 중심에 ‘
내 이름’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했다”, “내가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바벨의 탑을 다시 세우는 벽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이 높아질 때에만 우리의 존재는 진짜 의미를 얻게 됩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시115:1)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내 이름이 아니라 그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우리 위에 새겨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진짜 ‘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처럼,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그 약속은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자기 이름을 버리고 하나님의 이름 안에 거하는 사람, 그가 진짜 복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