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들은 노아의 자손의 족보대로 그 족속과 나라대로 나뉘었더라 홍수 후에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가 땅 위에 퍼지니라.”(창세기 10:32)
인류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된 장면이 반복됩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이름을 내고자” 합니다. 더 높이, 더 크게, 더 안전하게, 더 강하게, 그 욕망이 세상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습니다. 바벨탑은 단순한 고대의 건축물이 아니라, 그런 인간의 본성을 상징하는 탑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바벨의 심판 한가운데에서조차 구원의 족보를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그 긴 이름들의 나열 속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족보는 인간의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0장과 11장을 읽으면, 마치 고대의 족보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야벳의 자손, 함의 자손, 셈의 자손...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이름들은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인간의 역사라기보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어가셨는가를 보여주는 신적 기록입니다.
히브리어로 족보를 뜻하는 단어 ‘톨레도트(Toledot)’는 단순히 “후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단어 안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해 세우신 계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이 족보는 인간의 혈통의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흐름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톨레도트’는 창세기 2장 4절에서 천지 창조의 기록을 설명할 때 처음 사용되고, 이어서 아담, 노아, 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마태복음 1장 1절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에서 그 족보는 완성됩니다. 그리스도의 족보 속에는 바로 우리의 이름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족보 안에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이 족보는 곧 “구원받은 성도의 족보”, 즉 하나님 나라 시민의 족보입니다.
에벨, ‘건너간 자’,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세상을 건넙니다. 창세기 10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요…” 이 문장 속에 깊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에벨(Heber)’이라는 이름은 ‘건너가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히브리(Hebrew)’라는 말이 바로 이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언제나 세상에서 건너간 사람들, 즉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 사람’이라 불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했으나 세상을 건너, 하나님 나라로 이주한 자들입니다. 세상에서는 나그네이고, 본향은 하늘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건너간 사람들, 곧 순종하여 떠난 자들에게 흐릅니다. 그들이야말로 바벨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의 심판은 인간의 연합과 하나님의 흩으심입니다. 에벨의 두 아들 중 하나인 벨렉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창 10:25) 이 짧은 구절 속에, 바벨탑 사건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며 탑을 쌓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하나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온 땅에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땅까지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더 큰 멸망을 막기 위한 은혜의 개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교만이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그 흩으심은 저주가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흩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라인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벨렉의 계보, 곧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족보입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의 무너짐 속에서, 조용히 구속의 계보를 세우고 계셨습니다. 인간이 탑을 쌓을 때, 하나님은 ‘톨레도트’를 쌓고 계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의 족보는 에벨의 두 아들 중 벨렉의 후손으로 이어집니다. 그 긴 이름의 흐름 끝에 드디어 한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브람.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와 반역의 역사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바벨의 탑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믿음의 조상이 세워졌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바벨의 탑을 쌓고 있습니다. 더 높은 자리, 더 큰 성공, 더 많은 이름을 위해 경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 심판의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믿음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그 한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그 예수 안에서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상도 바벨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공주의, 세속주의,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시대, 사람들은 여전히 더 높이 오르려 하고, 하나님 없이 하나 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에벨의 후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세상에서 건너와, 믿음의 길을 걷는 자들이 바로 오늘날의 아브라함이며, 교회이며, 성도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심판 속에서 구원의 족보를 이어가십니다. 우리의 실패, 분열, 혼란조차도 하나님의 구속사 안에서는 새로운 은혜의 장이 됩니다. 바벨이 무너진 자리에서 믿음이 싹텄듯, 우리의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약속을 피워내십니다.
성경의 족보는 결코 지루한 이름들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 중에도 구원을 놓지 않으셨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의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족보는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우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톨레도트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그 이야기 속에, 나의 이름이 불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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