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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아브라함의 양보, 롯의 선택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14~15)

인생에는 늘 선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선택은 때로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선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무엇을 바라보았는지, 무엇을 의지했는지, 그리고 누구를 사랑했는지가 결국 삶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창세기 13장은 아브라함과 롯, 삼촌과 조카가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장면을 우리 앞에 펼쳐 보입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다”를 말해 주기 위한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공존하는 두 사람, 아브라함과 롯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함께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왔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양 떼와 소 떼, 종과 장막이 늘어나자 더 이상 한 땅에서 함께 지낼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갈등의 씨앗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애굽에서 얻은 그 풍요는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두려움과 불신앙에서 나온 산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 앞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애굽으로 내려가 아내를 팔고 재물을 얻었습니다. 그 재물은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고, 오히려 관계를 갈라놓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 번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이번에는 기근이 아니라 풍요였습니다. 적음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던 아브라함은, 많음의 시험 앞에 다시 서게 됩니다.

갈등의 한가운데서 아브라함은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그는 연장자였고,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으며, 충분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이 말은 단순한 양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의지의 고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땅이나 물질을 붙잡고 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는 이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존과 미래는 좋은 초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물질에 대해 자유로워진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도 자유로워집니다. 더 이상 타인을 경쟁자로 보지 않아도 되고, 빼앗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굳이 자기 몫을 움켜쥐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롯은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는 눈을 들어 요단 들판을 바라봅니다. 물이 넉넉하고, 초목이 무성한 그 땅은 그에게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성경은 그 땅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 표현은 롯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보다 풍요를 떠올렸고, 약속의 땅보다 애굽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롯에게 애굽은 실패의 장소가 아니라, 풍요와 화려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동산’과 ‘애굽’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고, 애굽은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의 힘으로 쌓아 올린 문명의 상징입니다. 이 둘은 결코 같은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욕에 사로잡힌 눈에는 그것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롯은 가장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했고, 점점 소돔 가까이 장막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결국 소돔에 정착했습니다. 풍요를 좇아 움직였지만, 그 끝은 죄의 중심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롯의 선택은 성공처럼 보였습니다. 좋은 땅, 부요한 도시, 사회적 지위까지 얻었습니다. 그는 소돔 성문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내면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
날마다 그 의로운 영혼이 고통을 받았더라.” 롯은 편안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풍요 속에 있었지만 평안은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날마다 상했고, 고문당하듯 괴로워했습니다. 결국 그가 얻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아내를 잃고, 사위들을 잃고, 동굴 속으로 쫓겨나 부끄러운 죄의 역사를 남깁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땅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빈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롯이 떠난 뒤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네 눈을 들어 보아라.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아브라함은 지금 당장 손에 쥔 것은 없었지만, 영원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늘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다가도, 어느 순간 롯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다가도, 금세 물질과 안정, 인정과 성공을 붙잡습니다. 성경은 롯도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셨지만,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
천국에 들어가는 최소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는 구원에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유리해 보이는 길을 택할 것인가. 당해 주는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움켜쥐는 길을 갈 것인가, 세상은 양보하면 손해라고, 당해주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양보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잃어버린 자리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빈자리를 약속으로 채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내려놓을 때 채워지고, 잃는 것 같을 때 얻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요단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있는지, 당해 주는 삶이 결코 패배가 아님을, 그 길 끝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길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파리하게 하셨도다”(시편 1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