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케티스에 살던 한 수도자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교부들은 모여 그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존경받던 한 교부는 그 자리에 나아가기를 꺼렸습니다. “남의 허물을 판단하는 자리에 내가 설 자격이 있는가?”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요청 끝에 그는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길을 떠나며 낡은 바구니 하나를 들었습니다. 바구니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는 그 안에 모래를 가득 담아 메고 갔습니다. 그러나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래는 구멍 사이로 흘러내려 뒤로 흩어졌습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자, 다른 교부들이 궁금해 물었습니다.
“스승님, 도대체 그 바구니는 무엇입니까?” 그는 담담히 대답했습니다. “내 죄들이 이 모래처럼 뒤로 줄줄 새어나가고 있는데, 나는 그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찌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심판하러 오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교부들은 더 이상 잘못한 형제를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용서하고 품어주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기 자신의 허물은 뒤로 흘려보내고, 남의 잘못만 크게 확대해서 바라봅니까? 내게 유리할 때는 “사람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라며 합리화하면서, 남의 작은 결점에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마치 자신은 완전한 사람인 듯 착각하며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주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 7:3). 내가 가진 큰 죄와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작은 잘못을 문제 삼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일깨워 주십니다.
마사 메리 마고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잊는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행복한 기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용서하고 잊는 것을 배우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일생 동안 그것을 거듭 상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남의 잘못을 오래 붙잡고 곱씹을 때 무겁고 괴로워집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흘려보낼 때, 마음은 가벼워지고 기억은 새로워집니다. 남을 향한 용서는 결국 나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낡은 바구니에 담긴 모래처럼, 나의 허물은 늘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내가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때, 남을 심판하려는 마음 대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는 마음이 자라납니다. 다른 이의 잘못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내 허물을 떠올리는 겸손이 우리를 주님의 용서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남의 잘못을 꼬집는 시간보다 나의 허물을 성찰하는 시간이 더 많기를. 그리고 내게 임한 주님의 용서가 흘러넘쳐, 다른 이를 용납하는 은혜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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