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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구약에 나타난 복음 - 폐허 위에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예레미야 30:1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예레미야 30장은 무너진 성읍 위에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달콤한 위로로 들리기 전에, 먼저 쓰라린 현실을 통과해야만 이해됩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이스라엘의 종교 열심이 절정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성전은 건재했고, 제사는 멈추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여기가 여호와의 전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성전 문 앞에 예레미야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망할 것이다.” “너희 신앙은 가짜다.” “이 성전을 여호와의 전이라 부르는 그 말이 거짓이다.” 이 말은 우상숭배자나 이방인에게 던진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목숨 걸고 섬긴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던진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선지자라기보다, 민족의 배신자처럼 취급받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말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이 거짓이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분노합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오고, 손해를 감수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너는 하나님을 모른다”라는 말은 견딜 수 없는 모욕입니다. 예레미야가 맞았던 매와 멸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고난 속에 살았습니다. 이사야는 왕족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수치를 입히셨고 에스겔은 아내를 잃고도 울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 자체를 메시지로 사용하셨습니다. 말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선지자의 삶을 통해 폭로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얼마나 스스로를 속이기 쉬운 존재인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외형을 먼저 갖춥니다. 성전, 제도, 윤리, 도덕, 열심,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 자신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가장 종교적인 우상숭배가 됩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많고, 십자가는 도시를 가득 메웠지만 사람들의 삶에서는 생명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밤의 도시처럼, 붉은 십자가 불빛은 가득한데 그 아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쳐 있고, 무기력합니다. 예레미야의 외침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오늘도 교회 앞에 서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 그 자리가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실제로 바벨론에 넘기셨습니다. 성전은 무너졌고, 도성은 불탔으며, 그들이 자랑하던 모든 것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 폐허 위에 다시 성읍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성읍은 폐허가 된 언덕 위에 다시 건축될 것이다.” 이 회복은 단순한 역사적 복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복음적 계시인 것입니다.

성도는 창세전에 이미 선택된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1장이 말하듯, 우리는 시간 이전, 영원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영광을 배우는 방식은 이 땅에서 바벨론 포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사실을 몸으로, 삶으로, 실패로 배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인생에서 가장 하나님을 찾게 되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형통할 때였습니까, 아니면 무너졌을 때였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모든 것이 잘 풀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설명으로만 알고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비로소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바벨론 포로는 저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은혜를 배우는 학교잇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흙’이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흙”이라고 부릅니다. 아담은 흙으로 지음 받았고, 죄 이후의 인간은 “죽은 흙”입니다. 흙에는 의지가 없습니다. 스스로를 변화시킬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자유의지로 선택했다.” “내가 결단했다.” “내가 믿음을 지켰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허락된 제한적 자유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의 삶은
“은혜가 빠진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무너뜨리십니다. 그리고 그 무너진 자리 위에 당신의 은혜로만 다시 세우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 나는 너희 하나님” 본문의 마지막 선언은 언약의 완성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은 인간의 결단으로 성취된 적이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먼저 하셨고, 인간은 그 뒤를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언약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본받아 살 수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코 본받을 수 없는 그 길을 예수께서 대신 걸어가셨기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목적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하는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깊어질수록 욕심은 줄어들고 비교는 사라지며 다른 사람을 향한 긍휼이 자라납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연극처럼 착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앞에서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폐허 위에 성읍을 세우십니다. 실패한 자리, 부끄러운 자리,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자리 위에 서
“네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를 물으십니다. 신앙은 결국 여기로 수렴됩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저는 안 됩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무너뜨릴 때 하나님 나라는 비로소 우리 안에서 시작됩니다. 폐허 위에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그분의 은혜는 오늘도 바벨론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