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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구약의 복음 - 기도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랴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0.

욥기 21장은 우리 신앙의 민낯을 정면으로 비추는 본문입니다. 욥은 악인의 삶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스올로 내려가느니라. 그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를 알기를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랴’ 하는도다.”(욥 21:13~15) 이 말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교회를 향해 기록된 책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 밖 사람들보다,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질문입니다.

욥이 묘사하는 악인들은 잘 삽니다. 자녀는 번성하고, 재산은 늘어나고, 병도 없고, 음악을 즐기며 인생을 누립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스올로 내려갑니다. 그런 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랴?” “기도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 고백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
유익의 수단’으로 여길 때, 기도를 ‘얻어내는 방법’으로 여길 때, 우리의 신앙도 결국 이 고백으로 흘러갑니다. 정성을 다했는데 응답이 없을 때, 열심히 기도했는데 인생이 나아지지 않을 때, 마침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말이 올라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셨는가?

종교란 무엇인가? 인간은 본래 종교적 존재입니다. 어떤 신이든 붙들고, 정성을 쌓고, 보상을 기대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은 모든 종교의 공통분모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신에게 ‘
최상의 것’을 드리려 합니다. 그러면 신이 감동해서 복을 내려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드릴 수 있는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내 몸, 내 시간, 내 헌신, 내 눈물, 심지어 내 생명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공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시 50편) 하나님이 구약의 제사를 명하신 이유는 피 냄새를 좋아하셔서가 아니라, 오직 메시지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안이 아니라,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영문 안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행위, 인간의 의, 인간의 종교가 총집결된 자리입니다. 율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모든 시도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체계 안에서 죽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영문 밖에서, 인간의 행위를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곳에서는 오직 하나만 선포됩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모든 것을 이룹니다.

찬송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짜로 맛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찬송입니다. 찬송은 거래가 아닙니다. “
이만큼 받았으니, 이만큼 갚아야지”가 아닙니다. 찬송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너무 커서, 도저히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드리는 무언가가 아니라,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반응인 것입니다.

기도는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레버가 아닙니다. 기도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의 자리에서 십자가의 은혜가 체험된다면, 그 자리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의 육적 자아와 이 세상에 대한 집착입니다. 그래서 참된 기도는 점점 이렇게 바뀝니다.
“살려주세요” → “죽여주세요”, “주세요” → “가져가 주세요”, “이 상황을 바꿔주세요” → “저를 부인해 주세요”

성경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신다고 말합니다. 이는 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돕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성령의 뜻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탄식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더 가치 있는 자리가 되기를 구하고, 성령은 우리 안의 자아가 죽기를 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그대로 받지 않으십니다. 오직 성령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입니다.

진짜 복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도 잘 사는 것을 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일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 내가 감당해야 할 자리, 그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는 모든 과정이 상인 것입니다. 그 일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신앙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여전히 이 세상을 목적지로 삼고 있는 신앙입니다.

어린아이는 “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란 자녀는 아버지와 대화합니다. “아버지, 왜 역사는 이렇게 흘러갑니까?” “왜 인간은 이렇게 죄로 가득합니까?” “당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한들 무슨 유익이 있으랴?”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유익 때문에 찾고 있는가, 아니면 은혜 그 자체를 알고 싶은가? 욥기는 우리를 유익의 신앙에서 은혜의 신앙으로 끌어냅니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고백하게 만듭니다.

"주님, 제 삶에서 제가 사라지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드러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