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러한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욥기 9:1~2)
구약에 이미 복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성경을 깊이 읽을수록 더욱 분명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인간의 실존과 하나님의 구원의 필요성은 이미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욥의 질문은 그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신학적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평생을 두고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며, 이 질문을 어떻게 붙드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깊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람의 인생은 결국 어떤 질문을 붙들고 사느냐로 결정됩니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묻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은 의미를 얻기도 하고 헛돌기도 합니다. 의사가 병의 본질을 잘못 진단하면 치료는 모두 헛수고가 됩니다. 변호사가 사건의 핵심을 놓치면 아무리 말이 많아도 판결은 바뀌지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보지 못한 채, 부차적인 것에 인생을 쏟아붓는다면 그 삶은 결국 방향을 잃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인,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피한 채 살아갑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죽음 이후의 문제는 외면합니다. 이 세상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여기며 성취와 성공에 인생을 겁니다. 욥은 이 모든 착각을 단번에 깨뜨리는 질문을 던집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가?”
욥은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거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덕적이었고, 경건했으며,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습니다. 자녀들이 혹시라도 죄를 지을까 염려하여 제사를 드렸고, 자신의 눈과 마음까지 관리하려 애썼습니다. 돈과 권력에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찾아오자, 욥은 점점 자기 자신을 알게 됩니다.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욥기 9:20) 이 고백은 겸손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욥은 실제로 깨닫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의롭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정죄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온전하다만은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의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욥기 9:21) 욥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신앙의 언어들이 무너지고, 자기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질문이 솟아오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진짜 왕 앞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임을 알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반발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체입니다.
욥은 이렇게 탄식합니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욥기 9:32~33) 여기서 ‘판결자’는 중재자, 곧 양쪽을 이어 줄 존재를 의미합니다. 욥은 본능적으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인간 스스로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자신을 씻고,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탄식 속에는 아직 이름 모를 복음의 그림자가 숨어 있습니다. “중재자가 없다”는 고백은, 곧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욥의 질문에 대해 신약은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더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로마서 5:15) 인간의 범죄로 정죄가 임했듯,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롭다 하심이 임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인간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인 것입니다.
은혜를 제대로 알게 되면, 삶은 오히려 더 외로워질 수 있습니다. 말씀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과 유익에 따라 걸러진다. 복음은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자기 의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진짜 형제를 만납니다. 예수의 십자가 아래서만 통하는 대화, 은혜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공감이 생깁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같은 은혜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서로가 귀해지는 관계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더 알수록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으로 포착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 욥은 결국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무너질 때, 신앙이 흔들릴 때, 붙들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린 유일한 친구이며, 길이고 생명입니다. 그분의 손을 붙들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식에 이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듯 의지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자녀가 자신을 믿고 매달릴 때 기뻐하십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인간은 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답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서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입고, 그분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구약에 이미 담겨 있던 복음이며, 욥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대답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은혜 안에서 삽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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