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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나아만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복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29.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열왕기하 5:1)

성경은 나아만을 소개할 때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그의 인생을 단 두 줄 안에 무너뜨립니다. “
그는 큰 용사이나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더라.” 여기서 “그러나”라는 접속사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이 인간을 바라보실 때 사용하시는 근원적 반전의 언어입니다. 세상 앞에서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장군, 나라를 구한 영웅, 왕의 신뢰를 받는 권력자. 그의 갑옷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빛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는 문둥병자, 즉 근본부터 부정하고 스스로 고칠 수 없는 죽음의 상태로 서 있었습니다. 이 단순한 전환은 우리에게 진실을 보여줍니다. 사람 앞에서 높아 보일수록, 하나님 앞에서는 더 깊은 부정함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의 모든 전쟁과 성공을 사용하셨습니다. 그가 우상을 섬기던 아람 사람이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담의 자손일지라도 하나님은 그의 삶에 이미 개입해 높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높아짐 한가운데 하나님은 문둥병이라는 상징적 죽음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높이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가장 낮은 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세상에서 높아지지만, 높아진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의 부패와 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나아만처럼 말입니다.

왜 하나님은 큰 자를 일부러 문둥병자로 남겨 두셨을까요? 나아만의 이야기 뒤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깊은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
”도, “징계”도 아닙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결코 생명과 구원을 만들 수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진리는 아담의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만들어 두셨습니까?

사람들은 이것을 단순히 “
아담의 욕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일어나도록 만드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허용하셨고, 그분이 설계하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늘의 존재는 오직 하나님이 숨을 넣어야만 살 수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
하나님 될 수 없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나아만은 전쟁에서는 큰 용사였지만 자기 생명 하나 고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 문둥병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라 타락, 죄, 부정, 죽음을 상징하는 인간의 본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높아진 자리에 반드시 이 문둥병을 남겨 두십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세상도 나아만과 같습니다.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유전자는 편집되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문명은 마치 스스로 구원을 이룬 듯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
과연 너희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여전히 문둥병자다.

가인의 문명, 바벨탑의 야망, 로마 제국의 찬란함이 결국 죄와 죽음 아래 무너졌던 것처럼, 아무리 인간의 지성과 기술이 높아져도 하나님은 그 중심에 변치 않는 진실을 남겨 두십니다. “
그러나 그는 문둥병자더라.” 새 창조가 없이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아무리 문명이 발전해도, 죄의 상태는 단 한 치도 치유되지 않습니다.

나아만의 고침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복음의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고칠 능력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무능력입니다. 가장 낮고 무시받던 어린 소녀의 말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
낮은 자”를 통해 은혜를 드러내십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아야만 그 길로 갈 수 있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높음이 아니라 낮아짐에서 시작됩니다. 요단강에 몸을 잠그라는 명령은 십자가 앞에서의 순종을 상징합니다. 요단강에서 나온 그는 새 사람, 새 창조였습니다.

이 전체 구조는 곧 성도의 구원 여정입니다.
자기 높음의 붕괴 → 낮아짐 → 십자가 앞에서의 순종 → 새 창조, 나아만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회복은, 하나님의 구원이 전적으로 은혜임을 드러내는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문둥병자로 두시는가? 나아만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병 고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시는 구원의 패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람의 삶에 개입하고 계십니다. 나아만이 하나님을 모르던 시절에도 하나님은 그의 전쟁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높아져도 하나님을 모릅니다. 큰 용사라 해도 여전히 문둥병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문둥병을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영혼을 깨우는 은혜의 첫걸음입니다. 그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영원히 자기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아만을 고치신 분은 엘리사도 아니고 요단강의 물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