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 이야기

권세와 권능-능력 너머의 관계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4.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는이라"(스가랴 4:6)

우리는 종종 ‘
능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이전에, ‘누구로부터’ 그 능력을 받았는지를 더 본질적으로 묻습니다. 그리고 그 근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권세와 권능이라는, 본질적으로 유사하지만 실상은 다르게 작동하는 두 개념 안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권세와 권능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
권세’(exousia)는 외부로부터 부여된 ‘합법적인 권한’입니다. 마치 대통령이 사인을 통해 법령을 시행할 수 있는 것처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대리적 권한입니다.

이는 ‘
지위’나 ‘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또한 그분의 대사로서 세상 가운데 살아갈 때, 이 권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권세는 자격증과도 같아, ‘지위’를 잃으면 사라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더 이상 권세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반면 ‘
권능’(dunamis)은 내면에 주어진 ‘작용의 힘’입니다. 이는 은사이며 능력입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고 복음을 전하며 강한 영적 영향을 끼치는 힘입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은사로 주신 것이며, 한 번 주어지면 소유자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능력은 올바르게 사용되지 않으면 ‘고갈’될 수 있고, 남용되면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권세 없는 권능이 있고, 권능 없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안에는 이 둘이 잘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병이 나았고, 설교에 감동이 있었고, 사람들이 변화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권세가 없이도 권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단절되었는데도 능력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권능이 ‘
은사’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한때 주신 것을 거두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롬11:29).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착각을 불러옵니다. 권능이 여전히 나타난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안에 있다고 믿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사실 많은 영적 리더들이 이 함정에 빠졌습니다. 능력이 계속되니,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이 경고는 단지 과거의 이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권능은 있지만 권세는 잃은 자로 살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날카로운 깨달음입니다.

권세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주어집니다. 그것은 자녀된 자에게, 종으로 부름받은 자에게, 대사로 위임된 자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권세는 우리가 기도할 때, 복음을 전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실제로 ‘
법적 효력’을 가지는 힘입니다. 그러나 이 권세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으면 곧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권세는 날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지표가 됩니다.

권능은 성령 안에서 주어집니다. 능력은 내면에서부터 작용하는 힘이며,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사용될 때 유익하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권능은 마치 배터리와도 같아서, 남용하면 방전되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권능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성령 없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칼을 휘두르되 눈을 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든지 자신과 공동체를 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 두 가지 권세와 권능을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권세는 질서를 세우고, 권능은 생명을 살립니다. 그러나 권세만 강조하면 율법주의에 빠지고, 권능만 강조하면 혼란과 무질서가 생깁니다. 역사 속의 종교개혁은 잘못된 권세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은사주의 운동은 잃어버린 권능의 회복을 갈망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우리에게 오직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이 두 힘은 바르게 사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권세와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는 없습니다. 주어진 능력은 남용될 수도, 유기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남용하면 심판을 받게 되고, 너무 소극적으로 아끼기만 하면 결국 빼앗깁니다(마 25:14–30). 달란트 비유는 이 균형과 분별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강력히 가르쳐줍니다.

참된 권세와 권능을 소유한 사람은 ‘
강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무기력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에만 민감하며, 하나님의 음성에만 민감한 사람입니다.

왜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시험에 빠지고, 무기력해지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지 아십니까? 권세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우리는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말씀을 전해도 변화가 없고, 사역이 지쳐가는지 아십니까? 권능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 삶은 끊임없는 분별과 절제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와 권능이 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권세는 관계의 선물이며, 권능은 은사의 선물입니다. 두 가지 모두를 맡은 청지기로서, 우리는 그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서 결산의 날을 기다리는 이들입니다. 그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21)

이 말씀을 듣기 위해, 오늘도 깨어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