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시편 64:7)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종종 이런 상황을 마주합니다. 거짓이 진실을 덮고, 불의가 정의를 조롱하며, 악한 자들이 서로 결탁해 더 큰 권세를 누리는 현실 말입니다. 그들은 교묘합니다. 다윗이 노래했듯, “칼같이 혀를 연마하고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며”(3절) 의로운 사람을 향해 숨어서 쏘아댑니다. 그들의 말은 칼날 같고, 그들의 계획은 어둠 속에서 짜인 음모 같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의롭게 살려는 사람은 종종 위축되고 상처받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실까?” “왜 악한 자들은 오히려 잘되는 것 같을까?” 이 질문이 마음속을 흔듭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 그들이 갑자기 화살에 상하리로다”(7절)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말은 단순히 ‘언젠가는 벌받을 거야’ 하는 막연한 위로가 아닙니다. 다윗은 정말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악인들의 음모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담담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
하나님의 정의는 결코 잠들지 않습니다. 악한 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누가 우리를 보겠느냐?”(5절)며 비웃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속뜻과 마음까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6절) 다윗은 인간의 교묘한 속임수를 인정하면서도,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정의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을 때에도, 그분은 이미 활시위를 당기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들을 쏘시리니”(7절) 그 어떤 인간의 묘책도 막을 수 없는 정의의 화살이 날아갑니다.
두려워해야 할 분은 사람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악인들의 협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이상합니다. 그 두려움은 오히려 평안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10절).
왜일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세상 그 어떤 두려움에도 잡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심판자이지만 동시에 피난처이십니다. 그분의 권능 앞에서 떨지만, 그 품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 라는 말은 믿음의 자유에서 나오는 담대함입니다. 오늘날에도 “악을 꾀하는 자들의 음모”는 여전합니다. 세상은 정의를 비웃고, 신앙을 조롱하며, 진리를 왜곡합니다. 그럴 때마다 믿음의 사람은 흔들립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뭐?”
이 말은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세상이 떠들어도,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악인이 흥하는 것 같아도, 결국 하나님이 그들의 말로를 정하십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원수의 모략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신명기 32:35) 그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 입술에서도 이렇게 고백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게 뭐? 내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나는 그분께 피할 뿐이다.”
악한 자들의 성공이 두렵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활을 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정의의 화살은 결코 빗나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나를 찌르고 아프게 합니까? 그 말보다 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을 덮으십시오. 그분의 진리가 당신의 방패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합니까? 그 두려움은 당신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품으로 피하게 하는 은혜의 손길입니다.
오늘도 세상이 악을 꾀하고, 불의가 판을 쳐도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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