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이 약해질 때에 땅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시편 61:2)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땅끝”에 서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힘이 빠지고, 마음이 꺾이고, 앞이 보이지 않아 한숨만 나오는 때 말입니다. 다윗도 그런 자리에서 이 시를 노래했습니다. 왕이었지만, 도망자였고, 권세를 가졌지만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그때 그가 한 일은 단 하나였습니다. “나보다 높은 바위로 나를 인도하소서.”
우리의 신앙 여정에도 오를 수 없는 “바위”가 있습니다. 그곳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다윗은 그 바위를 바라보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오르지 못하니, 주께서 나를 이끌어 올려주소서.” 이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때로 문제의 골짜기에서 헤매며, 스스로 해결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 골짜기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야가 좁아질 뿐입니다. 불안, 걱정, 두려움이 마음을 뒤덮고, 결국 평화는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올라오라. 내가 너를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겠다.”
한 번쯤 높은 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복잡하게 얽혀 보이던 길들이, 위에서는 단순한 한 줄의 선처럼 보입니다. 인생의 시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낮은 자리에서는 문제만 크게 보이지만, 하나님이 계신 높은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게 보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이다”(3절)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말한 ‘망대’는 단지 높은 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 피하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거기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적이 둘러싸도 안전한 곳. 바로 하나님 품, 주의 날개 아래입니다.
우리가 평화의 산으로 오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언가 대단한 수행이 아닙니다. 다윗처럼, 단순히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님, 내 마음이 약합니다. 나를 높은 바위로 이끌어 주소서.” 이 짧은 기도가 바로 산을 오르는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오르면 비로소 깨닫습니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내 손이 아니라, 나를 바꾸시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며 얻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라.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디쯤 있습니까? 지쳐서 땅끝에 서 있는가요? 아니면 골짜기에서 문제만 바라보고 있나요? 그렇다면 이제 시선을 옮기십시오. 평화의 산으로 올라가야 할 때입니다.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거기서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피난처가 되리라. 내 날개 아래로 피하라. 내가 너를 높은 곳에 세우리라.”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며, 매일 나의 서원을 이행하리이다.”(8절)
오늘 하루,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평화의 산으로 올라가십시오. 그곳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의 품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며, “주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견고한 망대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당신의 노래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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