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시편 44:23~26)
고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지극히 작은 기쁨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옥살이 중에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깊은 절망의 한가운데서 ‘지극히 사소한 기쁨’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아주 작은 위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 햇살 한 줄기, 바람의 냄새 하나가 그를 다시 살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내는 신비입니다.
시편 44편의 고라 자손들도 그런 신비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상황은 참혹했습니다. 나라는 이미 멸망했고, 민족은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삶은 치욕의 연속이었고, 그들은 매일같이 “죽을 지경에 처한 자들”(시 44:22) 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붙잡은 것은 힘이 아니라 기억과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함께하셨던 일들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귀로 들었나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들의 날에 주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에게 전하였나이다.”(시 44:1) 그 기억이 곧 신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전에도 구원하셨다면, 지금도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 그 기억은 고난 속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주여, 깨어 일어나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시 44:23) 절망 속에서도, 버려진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기도는 그들의 마지막 저항이자, 동시에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대답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남는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믿음이 무색해질 만큼 현실이 냉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크고 특별한 기적’이 아닙니다. 그저 기억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어느 날, 눈물 속에서 나를 붙들어 주셨던 그날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그 기억이 당신을 다시 살게 하고, 그 기도가 당신을 붙들 것입니다.
인생의 고통을 이기는 데 필요한 것은 보상이 아닙니다. 주님을 붙드는 한 마음,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여전히 살 수 있습니다. 아니,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찬송하며, 희망하며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소서.”(시편 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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