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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신앙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을 맛보신 인자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0. 15.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브리서 2:9)

우리는 흔히
“은혜” 하면 축복, 형통, 회복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님께 임했을 때, 그 은혜는 죽음의 길로 그분을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 은혜가 임했더니 예수는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존본능, 자기보존의 욕망, 즉 마귀성과 결합된 인간의 본성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 은혜는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새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은혜는 달콤한 위로가 아니라, 우리 안의 마귀성과 자아를 도려내는 불칼입니다.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이유는 단지 혈통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죄인 다윗의 자리”로 들어오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복잡한 인물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이면서도, 가장 추악한 죄, 간음과 살인을 범한 자입니다. 그 안에는 우리 모두의 실체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말은, 바로 그 죄인의 자리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후손”이란 단지 생물학적 계보가 아니라, 그 죄의 결과를 짊어지고 오신 자를 뜻합니다. 그분은 “우리 때문”에 오셨습니다. “죄인의 후손”으로 오셔서, “죄 없는 죽음”을 통해 죄인을 살리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다윗처럼 왕이 되고 싶어합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고, 내 이름이 남기를 원하고, 조직 속에서 위에 서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성과 결합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이 위계와 힘의 질서는 여전히 작동합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자리를 먼저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다윗의 구조를 깨뜨리십니다. 다윗은 왕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너진 사람입니다. 그의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나는 설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태어납니다. 바로 거기서 “다윗의 후손 예수”가 오십니다.

복음은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성숙해지는 것은 자기 힘으로 바르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넘어지는 자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갚으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아버지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우리를 조심하게 하고,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은혜의 삶은 “완벽하게 사는 삶”이 아니라, 감사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2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 그 말은 예수께서 완전히 인간의 자리, 즉 죽음과 수치의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낮아짐 속에서 하나님은 그분을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셨습니다. 다윗의 무너짐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그 죄인의 자리에서 피어난 구속의 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죽음을 통과하게 합니다. 은혜가 임할 때, 내 안의 왕권은 무너지고, 자기 의와 가능성은 부서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피어납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란, 곧 죄인의 자리로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셨기에, 나는 더 이상 내 힘으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를 감사함으로 사랑하며, 그 은혜를 찬송하는 자로 부름받았습니다.

“오직 우리가 예수를 보니,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히브리서 2:9)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복음이요, 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