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부는 밭을 갈 때 가장 힘이 센 소를 고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젊고 근육질이며 힘은 넘치지만, 고집이 세고 말을 듣지 않는 소는 쟁기를 끌기보다 사람과 씨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선택하는 소는 오히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묵묵히 주인의 음성을 듣고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순한 소입니다. 밭은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순종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굴레에서 벗어나십시오. 직장에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회의가 끝나면 늘 “그럼 이건 누가 할까요?”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모두가 눈을 피하는 사이 조용히 손을 드는 사람,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 이건 ○○님이 잘하시잖아요”라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정작 본인은 이미 업무가 과중한 상태임에도 말입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번만 내가 하지 뭐.” “거절하면 팀 분위기 깨질 것 같아.” “내가 안 하면 누군가는 더 힘들어질 텐데…” 하지만 며칠 후, 야근을 하며 혼자 남아 있는 사무실에서 그는 또 다른 생각에 잠깁니다. “왜 늘 나만 이렇게 바쁜 걸까?” “왜 사람들은 내 상황엔 관심이 없지?” 문제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기대’입니다.
친절은 종종 ‘무언의 계약’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상대도 언젠가는 나를 배려해 주겠지.” “내 마음을 알아줄 거야.” “말하지 않아도 느끼겠지.”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기대이며, 배려가 아니라 침묵 속의 요구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한 교회 봉사자가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먼저 나서고, 힘든 일도 묵묵히 감당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개인 사정으로 봉사를 쉬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습니다. “이번엔 좀 해주셔야죠.” “다들 힘든데, 혼자만 빠지시면 어떡해요?” 그 순간 그는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얼마나 헌신했는데…”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사람들은 그를 헌신적인 사람으로 대했을 뿐, 그의 속마음과 한계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상처의 정체는 ‘기대의 배신’입니다. 분노, 외로움, 소외감, 배신감 등, 이 감정들은 대개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편일 거라 믿었던 사람”, “나를 알아줄 거라 기대했던 사람”이 외면할 때 생깁니다. 기대는 말하지 않으면 계약이 아닙니다. 상대는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계산합니다. “내가 이 정도 했으니…” “이쯤이면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 계산이 어긋날 때, 우리는 상처받게 됩니다.
반복되는 역할은 관계의 구조가 됩니다. 사람 사이에는 패턴이 생깁니다. 항상 양보하는 사람은 계속 양보하게 되고, 항상 가져가는 사람은 그것이 당연해집니다. 문제는 상대가 악해서가 아니라, 내가 경계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어렵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은 사람에게 누가 먼저 그 한계를 물어줄까요?
거절은 사람을 밀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거절이 어려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거절하면, 상대를 상처 입히는 게 아닐까?” “관계가 틀어지면 어떡하지?”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밀어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부당한 상황이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인 것입니다. “지금은 제 여력이 안 됩니다.” “이번엔 어렵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이건 제 몫이 아닙니다.” 이 말은 무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직함이며, 자신과 상대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농부는 말을 잘 듣는 소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 소는 사람들의 기대에 끌려 다니는 소가 아닙니다. 주인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아는 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요청에 “예”라고 말하는 것이 순종이 아닙니다. 사람의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습니다.
오늘,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누구의 기대를 짊어지고 있는가? 정말 감당해야 할 몫인가, 아니면 습관이 된 역할인가? 침묵 속에서 쌓아온 기대가 나를 상처 입히고 있지는 않은가? 기대심리의 덫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단순합니다. 말하는 용기, 그리고 경계를 세우는 정직함입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쟁기에 끌려가는 소가 아니라 방향을 알고 걸어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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