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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단순한 삶 - 스스로를 들어 올릴 수 없는 존재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7.

사람은 자신의 허리띠를 잡고 스스로를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의지를 다져도, 자기 자신을 발판 삼아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안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으로도, 결단으로도, 감정으로도 결국은 ‘’라는 울타리 안에서 맴돌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더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 “마음을 굳게 먹으면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노력은 반복을 낳을 수는 있어도, 본질적인 전환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를 만든 틀 안에서 아무리 움직여도, 그 틀 자체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길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더 나은 길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길입니다. 우리는 흔히 ‘위로 올라간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사실 본성의 세계에는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개념이 없습니다. 나무가 자라듯, 강이 흘러가듯, 생명은 그저 확장되고 깊어질 뿐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려 애쓸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단단히 자신에게 묶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가 넓어질 때, 이전에는 전부였던 ‘’가 더 이상 중심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들어 올릴 수는 없지만, 내면에 있는 허리띠를 끊어 버릴 수는 있습니다. 그 허리띠란 무엇일까요? 나에 대한 집착인 내 기준, 내 방식, 내 성취,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강박, 의미와 가치를 내가 결정하려는 태도, 이 허리띠는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제자리에 묶어 두는 끈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새로운 높이로 옮겨 설 수 없습니다. 허리띠를 끊는다는 것은 무책임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용기입니다. 나를 증명하려는 삶에서, 나를 맡기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일이 ‘수단’을 넘어 ‘수행’이 될 때 이 지점에서 ‘’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은 흔히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해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성과를 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하는 것이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일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정신적인 수행입니다.

일은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깎아내고, 비우고, 바꾸는 자리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목적지, 곧 참된 존재의 변화와 성숙을 향한 수단이라면 어떤 일이 하찮을 수 있고, 어떤 일이 지겨울 수 있겠습니까? 눈에 띄지 않는 일, 반복되는 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조차도 그것을 통해 내가 조금 덜 자기중심적이 되고, 조금 더 넓은 세계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일은 이미 거룩한 자리입니다.

일은 사다리가 됩니다. 그래서 일은 우리가 딛고 올라갈 사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다리는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전의 나를 벗어나기 위한 사다리입니다. 일 속에서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내가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이 깨달음들은 우리를 낮추지만, 동시에 우리를 넓힙니다. 그리고 그 넓어짐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조금씩 탈바꿈됩니다.

삶의 목적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 자신에게 덜 묶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들어 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허리띠를 놓고, 세계를 넓히고, 주어진 일을 사다리 삼아 한 걸음씩 딛다 보면, 어느새 이전에는 서 있을 수 없었던 자리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변화는 소리 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 변화야말로, 우리가 향하고 있던 가장 높은 목적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