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은 언제나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인간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성실함과 신뢰가 깃들어 있습니다. 계절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고, 씨앗은 자기 때를 앞당기지도 미루지도 않습니다. 그래서일까. 자연은 세상 속에서 몇 안 되는, 믿어도 되는 영혼들의 편처럼 느껴집니다.
요령으로 살지 않고, 계산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 사람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를 떠올립니다. 세상의 속도와는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 홀로 산자락에 깃들어 사는 이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의 뜰에는 화려하지 않은 딸기와 토마도가 자라고 있습니다. 시장의 기준으로 보면 작고 투박할지 모르지만, 그 열매들은 거짓이 없습니다. 땅이 준 만큼 자라고, 햇볕이 허락한 만큼 익어갑니다. 산기슭에는 햇빛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몸을 기대고 있고, 바람은 굳이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을 느낍니다. 마치 인간의 계산과 상관없이 작동하는 어떤 더 큰 질서, 공평무사한 자비가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 있음을 직접 목격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신들이 있다면, 혹은 신의 손길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런 방식일 것입니다. 크게 외치지 않고, 눈에 띄게 개입하지 않지만, 묵묵히 필요한 것을 제때에 내어주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풍경 앞에서 우리는 결국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 길로 갈 것인가, 저 길로 갈 것인가.” 이 선택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길을 ‘아무 길이나 가도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길에는 분명히 성격이 있고, 방향이 있으며, 그 끝이 다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맞는 길이 있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여도, 자신에게는 숨 쉬기 편한 길이 있고, 남이 부러워하는 대로를 걷고 있어도 속이 점점 메말라 가는 길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자주 부주의하다는 데 있습니다. 혹은 너무 어리석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빠른 길, 쉬워 보이는 길,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을 선택하다가, 정작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길을 놓쳐 버립니다. 그렇게 선택하지 않은 길은 점점 마음속에서 희미해지다가, 어느 순간 ‘처음부터 없었던 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분명 그런 길이 존재합니다. 한 번도 제대로 선택해 본 적은 없지만, 꼭 걸어 보고 싶었던 길입니다. 숲 속의 오솔길처럼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왠지 그 길을 걸으면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질 것만 같은 길입니다. 이상적인 내면 세계의 길이란 아마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묵상이란 어쩌면 그 길을 다시 떠올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방향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만히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질문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모두와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네 삶에는 네가 걸어야 할 길이 따로 있다고 말없이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서 자연은 여전히 한쪽에 서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실한 영혼이 다시 자기 길을 떠올릴 때까지, 믿을 만한 침묵으로 우리 곁을 지키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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