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숲을 떠나며 숲에 들어갔던 이유만큼이나 분명한 이유로 숲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숲은 도피처가 아니었고, 안식처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삶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하나의 질문이었고, 잠시 멈추어 서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거울과 같았습니다.
숲 속에서의 시간은 고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이 영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나는 내 앞에 아직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삶이 남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 감당해야 할 부르심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렸습니다.
숲에서의 생활은 나를 비워 주었지만, 그 비워짐은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채워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숲에 머무는 것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머무름이 목적이 되는 순간, 숲은 깨달음의 장소가 아니라 또 하나의 습관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길’에 익숙해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정해진 길을 밟고, 어느새 그 길을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숲에 들어간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내 오두막 문간에서 호수까지 내 발자국만으로 하나의 길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 흔적도 없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같은 방향으로 걸어 다니다 보니, 땅은 눌리고 풀은 쓰러졌으며, 결국 누구나 따라갈 수 있는 ‘길’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선택이었으나, 반복되는 순간 습관이 되고, 습관은 곧 운명처럼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는 그 길이 정말 옳은지, 생명으로 인도하는지 묻지 않은 채 그저 편하다는 이유로 계속 걷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 위에서는 더 이상 방향을 고민할 필요도, 멈추어 설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큰길들은 얼마나 닳고 먼지투성이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욕망을 품고,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며 남긴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전통이라는 이름,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 바퀴 자국들은 너무 깊어서,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두렵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다들 그 길을 가니 나도 가야 할 것 같고, 거기서 벗어나면 실패자가 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숲은 조용히 말해 줍니다. 길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길을 계속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때로는 숲을 떠나야 하고, 때로는 다시 길 없는 곳으로 발을 옮겨야 한다고, 묵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누구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인가, 아니면 전통과 타협이 만들어 놓은 편안한 큰길인가?
숲을 떠난다는 것은 고요를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숲에서 배운 질문을 안고 삶의 한복판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나는 압니다. 길은 저절로 생기고, 사람은 그 길에 쉽게 길들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자주 멈추어 서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가?” “이 길은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가?”
숲을 떠난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더 많은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삶은 이미 닳아 있는 길 위가 아니라, 매 순간 선택과 깨어 있음이 요구되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나는 다시 숲을 등지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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