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유가 없기 때문에 기도하고, 기도하니까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사람들의 모습은 경외롭기까지 합니다. 티베트 삶의 환경을 척박하고 고달픕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기도가 깊어지고, 더불어 영혼의 우물도 깊어집니다. 영혼의 우물이 깊어지니 늘 여유롭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도에 대해 “시간이 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기도는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오히려 여유가 없기 때문에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유가 없기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니 마음이 정리되고, 그 기도를 통해 비로소 여유가 우리 안에 솟아납니다.
그리고 기도는 결핍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삶이 정돈되고 평탄해야 기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 속 인물들을 떠올려보십시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다윗은 도망자의 처지에서,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는 겟세마네의 고통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부족함과 결핍, 혼란 속에서 시작됩니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가장 진실한 기도는, 삶이 무너지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나옵니다. ‘살려달라’는 절박함이 담긴 기도,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과 영혼이 맞닿는 깊은 자리의 시작점입니다.
기도는 내면의 우물을 파는 일입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사원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드리는 기도는 단지 형식이 아닙니다. 그들은 땅에 몸을 던지고 또 일어나며, 자기 존재 전체를 던져 기도합니다. 그들의 삶이 척박하고 고달프기 때문에, 그 기도는 더 절실하고 간절합니다. 척박한 삶이 기도를 낳고, 기도가 깊은 내면의 우물을 파는 것입니다.
영혼의 우물은 결코 얕게 파이지 않습니다. 깊은 고통, 불안, 결핍 속에서 반복되는 기도의 동작은 우리의 내면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깊게 만듭니다. 그렇게 깊어진 영혼은 외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평온을 갖게 됩니다. 이 평온이 바로 ‘여유’입니다.
그리고 여유는 기도의 열매입니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야 기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참된 여유는 기도 없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일하라, 움직이라, 소유하라 말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멈춤입니다. 분주함 속에서 의도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거룩한 멈춤’입니다. 기도는 영혼을 정지시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정지에서 삶은 다시 중심을 잡습니다.
“여유는 상황이 아니라 상태입니다." 기도로 인해 내면이 하나님의 평강으로 다스려질 때,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감당할 힘을 공급받는 자리입니다. 기도하므로,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고, 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여유입니다.
언제 기도할 것입니까? “지금입니다." 삶이 분주할수록 기도해야 하고, 마음이 불안할수록 기도해야 하며,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더 깊이 엎드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혼란한 마음을 만지시고, 깊은 영혼의 샘을 터뜨리십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건 기도할 시간이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하나님께로 들어가십시오. 그 자리에서 우물을 파십시오. 눈물과 침묵과 고백으로, 내면의 땅을 깊이 깊이 파 내려가십시오. 그리하면, 고요한 여유가 당신의 삶을 감쌀 것입니다. 그 여유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이 기도 가운데 허락하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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