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하였으므로”(에스겔 22:30)
우리는 흔히 군대를 이야기할 때, 보병과 특수전 부대를 구분합니다. 보병은 수가 많고 전쟁의 기본을 이루는 병력입니다. 하지만 전쟁의 양상은 단순히 숫자로만 승패가 결정되지 않습니다. 해병대, 공수부대, 포병, 정보부대, 북파공작원처럼 특수한 임무를 감당하는 소수의 정예들이 전략의 중심을 이루고, 그들이 무너질 때 전체 작전은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와 같은 군대 구조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영적 구성과도 무척 닮아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부름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중보기도자’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이들입니다. 평범한 신앙인의 기도와는 다른 차원의 기도를 드리는 이들. 그들은 사단의 요새를 무너뜨리고, 보이지 않는 전쟁터의 최전방에 배치된 하나님의 정예병입니다.
전쟁에서 포병이 없는 보병만의 싸움은 불리합니다. 포탄이 날아와 적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보병이 전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듯, 중보기도는 영적 전쟁에서 영혼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의 포화를 퍼붓는 사역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는 중보기도를 단순한 ‘한 기도 패턴’ 정도로 생각하며, 그 전략적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이는 전투기의 공습 없이 보병만 앞세워 전쟁을 벌이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포병부대, 곧 강력한 중보기도 팀을 갖추고 정렬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단지 기도 열심이 아닌, 은사를 받은 이들이 연합되어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강력한 영적 구조물입니다.
중보기도자는 단순한 기도자가 아닙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으면 마음에서 기도의 불이 붙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기도의 열망이 끓어오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으시는 은혜입니다. 그들은 기도 중에 특정 인물이나 상황이 떠오르고, 그를 위해 기도할 때 눈물과 감정이 이입되어 마치 그 고통이 자기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중보기도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통로입니다. 기도의 제목이 ‘내 것’에서 ‘그 사람의 것’으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행되며, 이는 기도를 보좌까지 연결시키는 통신선이 됩니다.
중보기도자는 단지 기도에 열정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다른 이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며, 스스로 해보겠다고 고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홀로 선 자보다 서로 짐을 지고 연합하는 공동체를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부르신 하나님은 ‘혼자 해결’보다 ‘함께 기도’하는 것을 더 귀히 보십니다. 중보기도자는 그렇게 공동체를 위해 짐을 함께 지는 자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위임하신 기도의 대사입니다.
그들의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이 권세를 띠듯, 기도에도 권세가 있습니다.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드러나며,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일들이 이들을 통해 벌어집니다. 기도할 때 병이 폭로되고, 숨기던 상처가 터져나오고, 감춰졌던 죄가 자백됩니다. 이는 단지 영적 카리스마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기도에 권세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자에게는 기도 사역을 돕는 천사들이 함께 합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천사가 와서 힘을 더해준 것처럼 중보기도자에게도 돕는 영들이 보내집니다. 이것은 상징적 표현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영적 현상입니다. 중보기도자가 기도하면, 그 공간의 공기가 달라지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의 몸에 변화가 생기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집니다.
영적 권세는 물리적 현실에 영향을 끼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뒤로 넘어졌고, 엘리야의 기도에 하늘에서 불이 떨어졌으며, 모세가 기도할 때 아말렉이 패배했습니다. 이런 기도는 특별한 은혜이며, 이 능력을 감당하기 위해 중보자는 오랜 시간 자신을 낮추고 훈련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자칫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권세에 놀라고, 이후에는 그 능력을 자기 것으로 오해하며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중보기도자는 반드시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삶을 살아야만 그 능력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능력은 위험한 것이기에,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그 권세가 곧 짐이 됩니다. 강력한 권세는 ‘깨짐’ 없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부서지고, 고난과 실패를 통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은 더 깊은 기도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중보기도자는 그 자체로 교회의 기둥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순한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는 중보기도자의 영적 권세와 가치를 분별하고, 그들을 양육하며 세워야 합니다. 기도 사역의 중심에 이들이 서야 교회는 진짜 영적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인맥, 학맥, 배경이 아닌 영적 유대로 결속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그 유대의 중심입니다. 중보기도자는 그 결속의 실마리를 잡는 사람입니다. 그들을 통해 교회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뿐 아니라, 영적 돌파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중보기도는 단지 개인의 신앙 생활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영적 생명을 유지시키는 본질적 사역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불을 내리고, 천사들이 움직이며, 사단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영적 ‘포병’의 역할입니다.
중보기도자는 하나님의 영을 지닌 자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보좌를 흔드는 권세를 받았고, 그 권세는 교회를 일으키는 불씨가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진정한 영적 갱신과 회복을 이루려면, 중보기도자들을 깨우고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자신을 낮추며 엎드려야 합니다. 능력이 아니라 은혜로, 권세가 아니라 사랑으로, 싸움이 아니라 순종으로 살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중보기도자, 그들은 보좌를 흔드는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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