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예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종종 미래에 대한 신비한 암시, 혹은 점술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그 본질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언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메시지입니다. 헬라어로 예언은 ‘프로페테이아’라 하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은사’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에서 파생된 영어 단어 ‘prophecy’ 역시 본래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행위이지,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거나 점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예언(豫言)’도 정확히는 ‘미리 말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뿌리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예언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입니다. 예언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설교자가 예언자는 아닙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지금 이 자리에서 선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계시를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그것은 설교나 교훈처럼 조직된 신학이나 인간의 경험에서 흘러나온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메시지입니다. 때로는 위로의 말로, 때로는 권면으로, 때로는 책망으로 주어집니다.
그 안에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담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미래는 점괘처럼 길흉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하나님의 일’, 그 일의 방향성과 결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한 신실한 언약입니다. 성경은 반복하여 하나님께 “장래 일을 물으라”고 하십니다(사45:11). 또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며, 장래 일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16:13). 이는 예언의 본질이 ‘장차 되어질 일’을 포함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미래는 단순히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고, 요셉은 꿈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계시받아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들이 믿은 것은 ‘미래’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의 핵심입니다.
예언은 불안을 평안으로, 절망을 소망으로 이끕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예언은 두려움에 빠진 자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예를 들어, 실직한 성도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너의 삶을 새롭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신다면, 그것은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병은 나을 것이다”라는 계시를 주신다면, 그것은 단순한 소망이 아닌,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예언은 그렇게 실제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미래적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시며, 예언을 통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세워가십니다.
예언은 비전이며, 동시에 일용할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비전일 수도 있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일용할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큰 약속이며, 후자는 오늘을 이끌어가는 세밀한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QT를 하는 이유도 결국은 이 ‘하루의 약속’을 얻기 위함입니다. 예언은 단지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만의 몫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는 성령 안에서 장차 되어질 일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예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언은 종종 teaching(가르침)만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언이 미래를 말하는 foretelling(예언)과는 상관없고, 단지 교훈적인 preaching(설교)에 가깝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보여주는 수많은 예언자들의 역할을 지나치게 축소시킨 해석입니다.
성경 속 예언은 늘 장래의 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를 말했고, 엘리야는 다가올 재앙을 예고했으며, 이사야는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했습니다. 신약에 와서도 아가보는 기근을, 요한은 계시록에서 마지막 때를 예언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이루실 구속사의 진행,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일’입니다.
따라서 예언은 본질적으로 foretelling(예시), 즉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한 선포입니다. 단, 그 초점은 인간의 호기심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뜻입니다.
예언을 통해 우리는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우리를 현실의 고난과 불안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닌,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고랑을 곧게 가는 이유는 멀리 있는 목표를 보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목표는 방향을 계속 바꾸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천국이 있다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이 땅의 고난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내일의 회복이 있다는 약속이 있기에 오늘의 눈물을 참을 수 있습니다. 예언은 바로 그런 미래를 밝히는 등불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언약이며, 믿음의 근거입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이며, 이 약속이 바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우리의 신앙을 지탱하는 근간이자, 신실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장차 되어질 일을 묻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뜻과 목적, 위로와 지시를 아낌없이 말씀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묻고, 들으며, 믿고, 나아가십시오. 예언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요, 그 약속을 따라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사 45:11).
“그가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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