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마태복음 12:28,31)
마태복음 12장에는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오해받기 쉬운 경고가 등장합니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오랫동안 많은 성도들에게 두려움의 언어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신앙을 붙드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을 위축시키는 협박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목사의 말을 거역하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다.” “교회의 일을 방해하면 용서받지 못한다.”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면 지옥 간다.” 이런 말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들어왔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령훼방이 정말 그런 것일까요?
성령훼방은 ‘권위에 대한 불순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훼방에 대해 말씀하시기 전에 한 가지 분명한 상황 속에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고, 눈먼 자를 보게 하셨으며, 벙어리를 말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분명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사건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사탄의 일로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무지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을 가장 열심히 섬긴다고 자부하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로,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거부했습니다. 성령훼방은 단순한 실수나 연약함이 아닙니다. 권위에 대한 불순종도 아닙니다. 성령훼방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원을, 끝까지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성령의 사역은 ‘능력 과시’가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을 과시하게 하시거나, 신비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분명합니다.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의에 대하여 알게 하시며, 심판에 대하여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십니다. 즉, 성령의 모든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끄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령을 마치 ‘능력의 원천’처럼 취급합니다. “성령 받아라”라는 말이 주문처럼 사용되고, 성령은 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비한 힘 정도로 축소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성령을 충만히 받으셨지만, 결코 떠들지 않으셨습니다. 다투지 않으셨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성령이 이끄는 사역은 언제나 겸손하고, 조용하며, 자기 부인이 동반됩니다.
기적은 목적이 아니라 표지입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인기를 얻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기적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표지판만 보고 길은 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기적을 원하지만, 십자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능력은 원하지만, 회개는 싫어합니다. 축복은 원하지만, 자기 부인은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오히려 자리를 떠나십니다. 사람들이 오해한 복음을 퍼뜨릴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훼방은 ‘구원을 거부하는 종교성’입니다. 성령훼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율법을 지켰고, 기도했고, 금식했고,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열심이 자기 기대를 내려놓지 못한 종교성이었기에,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이 성령훼방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이 땅의 안정과 성공을 더 사랑하고, 구원보다 당장의 문제 해결을 더 원하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보일지라도, 성령의 사역을 거부하는 태도라면 그것은 훼방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화려한 예배당도, 대형 교회도, 눈에 띄는 업적도 마지막 날에는 불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붙드시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전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이것입니다. “나는 지금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는가?” 아흔이 넘은 한 권사의 기도처럼, 마지막에 남는 기도는 오직 하나입니다. “주님, 제가 잘못 믿고 있다면 바로잡아 주십시오.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성령이 아니라 자기 기만입니다. 성령훼방은 실수로 짓는 죄가 아닙니다. 연약함 때문에 넘어져 짓는 죄도 아닙니다. 성령훼방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려는 고집, 끝까지 자기 기대를 내려놓지 않으려는 종교성, 끝까지 십자가 없는 예수를 붙드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성령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며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신앙입니다.
매일 자신을 살피십시오.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십자가 없는 복음을 경계하십시오. 예수를 잘 믿으십시오. 그것이 성령훼방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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