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18)
에베소서 5장 15절부터 27절은 성령 충만을 다루는 본문 가운데 가장 오해가 많이 되는 말씀입니다. 많은 이들이 18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구절만 떼어내어 읽지만, 사도 바울은 이 명령을 삶 전체의 방향성 속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어떤 신비한 체험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식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의 상태입니다.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완성된 이후,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는 사건입니다. 성령은 그 눈이 열린 자들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예수가 누구신지를 알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중요한 점은 성령세례가 우리의 요구나 열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단번에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모한다고 해서, 기도한다고 해서 성령세례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린도전서 12:13) 여기서 ‘세례를 받아’라는 말은 헬라어 과거시제로, 한 번 일어나고 완결된 사건을 뜻합니다. 성령세례는 거듭남의 순간 단번에 주어지는 사건이며, 성령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시키십니다. 이것이 성령세례인 것입니다.
반면, 에베소서 5장 18절의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현재시제입니다. 이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은 단번의 사건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내야 하는 삶의 방향입니다. 성령세례가 우리의 신분에 관한 사실이라면, 성령 충만은 우리의 삶에서 경험되는 실제입니다.
성경은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령이 충만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분명한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베드로, 스데반, 바울, 바나바, 그리고 초대교회의 제자들까지, 그들은 모두 성령이 충만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만이 구원의 길임을 선포했고,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에 계신 예수를 증언하다 순교했습니다. 바울 역시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가로막는 거짓을 꾸짖고 담대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누구도 성령 충만의 결과로 자기 체험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이나 방언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만을 말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역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한복음 16:14)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을 말하지 않고, 예수를 말합니다. 예수를 자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예수를 말하지 않는 신앙은 성령세례 자체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를 전한다는 말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를 바르게 전하려면 예수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른 교훈”을 경계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교리를 모르면 복음은 반드시 왜곡됩니다. 이단들이 성경을 사용하면서도 이단이 되는 이유는 성경이 아니라 해석과 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체험 중심의 신앙은 위험합니다. 체험은 해석되지 않으면 방향을 잃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인지, 자기 감정인지, 심지어 다른 영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말씀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 다.
성령 충만은 또한 삶으로 드러납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 바울은 성령 충만을 말한 직후,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꺼냅니다.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종과 상전의 관계, 다시 말해 성령 충만은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가정과 일상에서 검증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집에서 달라집니다. 말투가 달라지고, 분노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고, 용서와 인내가 삶에 스며듭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5장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것이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을 말하면서도, 정작 예수의 명령에는 무관심합니다. 머리는 예수인데 몸이 따르지 않는 상태, 그것은 성경적으로 말하면 마비입니다. 머리가 명령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성령 충만을 말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조명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무시하면 성경은 그것을 “성령을 소멸한다”,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고 부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성장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예수는 복을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 해결사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철저히 신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내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언제나 십자가의 방향을 가집니다.
잘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세례,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아무리 강렬한 감정을 느껴도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왜곡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를 높이십니다. 예수를 닮게 하십니다. 예수를 전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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