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로마서 3:20, 11:32)
성경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사람의 선행이나 양심적인 행동으로는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과 도덕, 종교적 열심도 하나님의 의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추상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역사와 언약을 통해 계시로 보여주셨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하셔서, 왜 하나님의 의가 오직 은혜의 선물이며 믿음으로만 주어지는지를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율법도 없을 때, 어떤 종교적 행위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다음 단계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은 “이렇게 지키면 의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았고, 약 1500년 동안 율법 아래에서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율법을 받았지만,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폐기되지 않습니다. 바벨론 포로 중에서도 남은 자가 있었고, 그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자성합니다. “우리가 포로가 되고 나라가 무너진 이유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명기에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하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포로 귀환 이후, 율법을 철저히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파 운동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지 의논했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율법을 가장 철저히 지키겠다고 했던 자들이 율법의 완성자를 제거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성경은 분명히 드러냅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자부한 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어떤 죄인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자들이었습니다.
율법의 진짜 목적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 그리고 성령이 임하신 후에야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도들은 성령의 계시로 신약을 기록하며, 율법이 왜 주어졌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3장 19~21절 말씀에서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변명의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율법을 완벽히 지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율법으로 의에 이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의를 주는 도구가 아니라, 죄를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로마서 4장 15절은 말합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않고, 죄 아래 가두는 기능을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율법을 전해 준 모세 자신도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신명기 31장은 이스라엘이 결국 언약을 어기고 심판을 받을 것을 미리 선언합니다. 율법은 “지킬 수 있으니 지켜 보라”는 초대장이 아니라, 어길 때 깨닫게 하기 위한 증언이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렇다면 질문이 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의와 영광에 이를 수 있습니까?
로마서 3장 24~28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값없이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공로가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로마서 11장 32절은 율법의 궁극적 목적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율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긍휼 외에는 길이 없음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긍휼을 싫어합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끊임없이 열심을 쌓아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만, 실상은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영광을 찬탈하려 했고,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했습니다. 이것이 근원적인 죄입니다. 빌립보서 2장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구원이란 열심히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 길만이 모세 언약이 가리키던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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