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이야기

기독교 - 이해하려 하지 말고, 믿음의 자리에서 서라(삼위일체)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2.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삼위일체는 언제나 우리를 멈춰 서게 만듭니다. 머리를 쓰면 쓸수록 더 멀어지고, 설명하려 들수록 더 복잡해집니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남겨두신 영역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정복할 수 없는 자리, 오직 믿음으로만 설 수 있는 자리 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사도 바울은 축도 한 문장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을 나란히 놓습니다.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분들 안에서 살아가라는 초대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세 분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이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 전체가 증언하는 핵심 고백입니다. 그런데 질문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 보좌에는 누가 계십니까? 성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입니까? 하늘 보좌에 두 분이 계신 장면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며 본 환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행 7:55~56). 이 장면은 연극이 아닙니다. 상징도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가 구별된 위격으로 동시에 존재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실제인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두 분입니까?” 이 질문 자체가 이미 인간 이성이 만든 덫입니다. 숫자로 하나님을 재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이성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시는 동안, 우주는 누가 다스렸습니까?” 또 묻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사시는 동안, 하늘의 왕좌는 비어 있었습니까?” 이 질문들은 매우 논리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들은 하나님을 시간과 공간 안에 가두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분의 존재 방식은 우리의 존재 방식과 다릅니다. 성자는 성부와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셨고, 우주는 단 한 순간도 그분의 통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요 14:16) 기도는 연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복화술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관계를 전제합니다. 성부께 구하는 성자, 성부께서 보내시는 성령, 그리고 그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십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세 위격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 세 분은 서로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가리지 않으며, 하나의 구원 목적을 향해 완벽하게 일하십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하려다 보면, 사람은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는 삼신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완전히 분리된 세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다신교입니다. 다른 하나는 양태론입니다. 한 하나님이 시대마다 가면을 바꿔 쓰고 등장한다는 주장입니다. 아버지였다가, 아들이었다가, 성령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아빠이자 남편이자 아들인 한 사람”이라는 비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설명은 쉽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것입니다. 성경은 한 번도 “성부가 곧 성자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항상 성부와 성자를 구별하면서도, 동일한 본질을 가진 하나님으로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이 말씀을 숫자로 이해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는 숫자의 하나가 아니라 본질의 동일성입니다. 마음이 하나이고, 뜻이 하나이고, 영광과 거룩과 능력이 하나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은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본체, 같은 본질을 가지신 분입니다. 경륜 속에서의 질서, 본질 안에서의 동등, 성부, 성자, 성령은 본질상 동등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의 경륜 속에서는 질서가 있습니다. 성자는 아버지께 순종하셨고, 성령은 성자의 사역을 적용하십니다. 이것은 열등함이 아니라 자발적인 복종입니다. 사랑 안에서의 질서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권력 구조가 아니라 사랑의 구조입니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붙드십시오. 삼위일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배의 대상입니다. 이 교리를 이해하려다 신앙을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교리를 붙들다가 목숨을 내놓은 성도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성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성령 하나님은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 사실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분들 안에서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신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