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22:1~11
1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 마지막 외침은, 복음서를 읽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단순한 고통의 신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존재의 가장 깊은 곳을 찢어내는 절규였습니다. 그러나 그 절규는 곧 시편 22편의 첫 구절과 이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시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긴 신앙의 길을 붙잡으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시편 22편을 ‘탄식시’로만 읽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시는 단순한 절망의 외침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노래이자 ‘의지시’입니다. 시인은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6절)라고 고백하며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현실을 담담히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모태에서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10절)라고 선포합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붙드셨다는 사실을 놓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단지 평안할 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주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부르짖음은 패배의 언어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언어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도 이러한 절규와 의탁이 있었습니다. 일제의 억압과 전쟁, 독재와 혼란, 여러 차례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이 땅을 붙드셨습니다. 임시정부가 세워진 지 백 년이 지났습니다. 불과 한 세기 동안에도 이 나라가 얼마나 자주 넘어지고, 얼마나 자주 다시 일어나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단순히 민족의 힘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부르짖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기 쉽습니다. 어려움이 다가오면 쉽게 원망하고, 하나님이 계신지조차 의심하기도 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절규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절규가 곧 믿음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속에는 이미 믿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면, 애초에 부르짖을 이유조차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불평과 원망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현실이 답답하다고 “왜 나를 도우시지 않습니까?”라고 계속 징징대곤 합니다. 그러나 시편 22편의 기자는 절망에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을 구원하셨던 역사를 기억하며, 그 동일한 하나님이 자신도 구원하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28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주권은 주님께 있으며, 주님은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믿음의 노래입니다. 처음에는 “어찌하여”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주님은 다스리신다”라는 고백으로 끝납니다. 고난을 피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었기에 가능했던 전환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전환이 필요합니다. 불평과 징징댐에 머무르지 않고, “주님이 다스리신다”는 고백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의 길입니다.
시편 22편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버림받으신 것 같았던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이 끝내 버리지 않으셨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길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주님의 주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다시 힘을 내어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이 곧 믿음의 찬송으로 바뀌기를, 우리의 절망이 곧 소망의 고백으로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고난의 순간에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믿음입니다. 절규는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의탁의 고백입니다. “징징댐”에 머물지 말고, “주님은 다스리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삶과 나라를 붙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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