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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이야기

낙심의 훈련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8. 9.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요.”(누가복음 24:21)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의 말은 단순한 한탄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한 모든 사실, 즉 예루살렘에서의 사건들, 십자가, 빈 무덤에 대해 사실이었지만, 그 사실에서 끌어낸 결론은 틀렸습니다. 이처럼 사건 자체와 그 사건으로부터 만들어낸 ‘
해석’은 다릅니다. 우리가 낙심에 빠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낙심은 외부의 사건(결과나 상황)이 만든 ‘객관적 증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마음속의 해석과 욕망이 낳는 반응입니다.

낙심은 크게 두 방향에서 옵니다. 하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
당장’ 얻었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얻지 못했을 때입니다. 얼핏 모순처럼 보이지만 둘 다 동일한 중심인 내가 주인 되어야 한다는 욕망(정욕)에서 비롯됩니다. 만족했을 때의 낙심은 우리가 정욕을 따라 즉각적 만족을 누렸지만 그 만족이 오래가지 않을 때, 허탈과 공허가 뒤따릅니다. “이제 됐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우리를 더 얽매어 버립니다. 기도마저 내 손안의 응답을 위한 도구로 삼았을 때, 응답 이후의 공허는 깊은 낙심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했을 때의 낙심은 반대로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원망합니다. “
하나님은 내 뜻에 응답해야 한다”는 고집이 실망으로 변할 때, 그 탄식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흔듭니다. 두 경우 모두 핵심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낙심은 자라납니다.

정욕(욕망)은 단어 자체로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욕망의 ‘
우선순위’와 ‘대상’입니다. 영적 정욕은 하나님을 향한 바람 자체를 대상화시키고, 그 바람의 충족을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응답을 뽑아내는 수단’으로 전락시키면,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을 소유하려 들게 됩니다.

진정한 기도는 응답을 얻어내기 위한 조작이 아니라, 응답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매달리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
기계적 입력→출력’이 아니라 ‘사랑의 응답’이며, 그 핵심은 하나님께 내 마음을 붙이는 것입니다. 응답이 없을 때에도 붙들리는 훈련, 이것이 영적 정욕을 다스리는 출발점입니다.

낙심은 영적인 병적 징후입니다. 몸의 평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눌리며, 신앙의 활력이 소진됩니다. 사람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책망하거나, 도망가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은 모두 그 증상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낙심의 책임은 언제나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
네 탓이다’라는 비난이 아니라, 내 마음의 우상과 해석 습관을 바로 보는 소명입니다. 누군가의 행동, 환경, 다른 사람의 실패가 우리의 낙심을 ‘촉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영적 상태’로 굳히는 일은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회개와 자기 점검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환상, 지진과 천둥 같은 극적 표징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대개 ‘
평범’ 속에서 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만찬의 빵과 일상적 빵상에서, 겸손한 섬김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극적 표징을 갈망할 때, 오히려 일상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낙심은 그 ‘눈 가림’에서 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방식’이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낙심은 치료할 수 있는 영적 습관과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다음은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연습들입니다.

첫째, 정직한 고백은 낙심이 왔을 때, 먼저 ‘무엇을 원했는가’를 솔직히 하나님 앞에 고백하십시오. 그 욕망이 하나님보다 앞섰다면 그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둘째, 감사의 일기는 매일 세 가지 ‘평범한 은혜’를 적어 보십시오. 음식, 대화, 쉬는 시간 등에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셋째, 기도의 재조정은 ‘하나님, 이 상황에서 나를 어떻게 연단하시겠습니까?’ 같은 기도로 바꾸어 보십시오. 이는 응답의 방식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시하게 합니다.

넷째, 작은 일에 충실은 ‘가까이 있는 책임’을 다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청소, 돌봄, 직장에서의 성실함이 평범한 충실함 속에서 하나님은 신실히 계십니다.

다섯째, 공동체의 투명성은 낙심을 숨기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형제자매와 나누십시오.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세워줄 때 낙심은 가벼워집니다.

여섯째, 성경 묵상과 침묵은 말씀을 읽되 ‘응답’이나 ‘결과’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 말씀 앞에서 묵상하며 머무르십시오. 침묵은 응답을 기다리는 영혼을 단련시킵니다.

일곱째, 전문적 도움의 수용은 낙심이 고립, 무기력, 자해 생각 등으로 깊어진다면 심리치료나 의료적 도움을 받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영적 문제와 정신건강 문제는 함께 돌봐야 합니다.

여덟째, 영적 회복의 루틴은 규칙적 예배, 성찬, 고백의 시간이 반복되는 예식은 우리의 마음 우선순위를 재정비해 줍니다.

낙심은 단지 실패나 죄의 증거만이 아닙니다. 때로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내면의 우상을 드러내기 위해 허락하신 진단일 수 있습니다. 진단이 고통스럽더라도 고쳐야 할 병을 알게 된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낙심 앞에서 피하지 말고, 그 속에서 무엇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 무엇이 나를 주님보다 먼저 세우는지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겸허히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오.

낙심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한 부분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주저앉히는 최종 판결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훈련입니다. 평범을 지켜내는 작은 충실함과 기도 가운데 머무름이 우리를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