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고전 1:17)
바울의 고백은 단순한 직업 선언이 아니라 신학적·영적 중심을 드러냅니다. 바울에게 ‘부르심’의 핵심은 기도 방법도, 도덕적 완성도 아니고, 복음 곧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구속의 실체”를 담대히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복음은 무엇인가? 복음은 개인의 좋은 체험(거룩해짐, 평안 등)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닙니다. 복음은 먼저 객관적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사(구원의 역사) 입니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바꾸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온 세상을 새롭게 하고 회복시키며 결국 하나님 보좌 앞에 드러낼 영광의 실체입니다.
개인이 구속의 능력을 체험하는 일은 귀하고 실제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체험을 복음의 ‘목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이나 거룩함을 내세워 복음을 포장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에게도 “나처럼 되어라”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설명하거나 확증할 뿐, 메시지의 중심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분의 주 되심에 놓았습니다.
예수님의 구속은 ‘나를 성자로 만들기 위해’만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복음의 스케일을 넓혀 줍니다. 구속은 개인 구원뿐 아니라 창조의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때가 찼음을 선포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그분의 주권 아래로 회복시키실 목적을 이루십니다. 따라서 개인적 체험은 구속의 ‘증거’이지, 구속의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바울의 삶에서 드러나듯, 복음을 위하여 맞는 고난과 환난은 오히려 그를 굳건하게 했습니다. 고난은 자존심을 꺾고, 자기 의에 머무르는 것을 제거하며, 사람과 상황을 넘어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만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마저도 환영했습니다. 그것들이 그를 복음의 반석에 더 굳게 세웠기 때문입니다.
설교나 증거는 나의 거룩함이나 변화된 상태를 과장해 내세우는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말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행위와 그분이 이루신 구속을 가리켜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 간증은 복음의 빛을 비추는 창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 자체가 목적이 되면 곤란합니다. 간증은 “이렇게 되었으니 너도 이렇게 되어라”가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났고,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 때문이다”라고 가리켜야 합니다.
복음의 반석을 바로 세우면 우리의 기도 생활도 달라집니다. 끊임없는 불안과 사소한 번민으로 하나님을 ‘귀찮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물론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의 기도를 깊은 신뢰와 감사로 성숙시킵니다. 하지만, 시련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복음을 위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면 그것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고, 전할 메시지의 진실성을 견고히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의 말과 삶이 그분을 증거할 때, 단지 개인적 회심이나 감정의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참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우리의 체험을 나누되, 항상 복음의 반석 위에 서서 그리스도를 높이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선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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