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하고 단순하게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남성다운 여성, 여성다운 남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 양성적 특성을 모두 개발하십시오.
왜 세상에는 두 개의 성(性)이 존재할까요? 만일 세상에 하나의 성만이 있고 생산 능력이 반으로 분담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즐거움은 크게 줄어들고 코미디언들은 이야깃거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남성적' 혹은 '여성적'인 역활에만 국한시키는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생물학적 성의 차이를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성과 다양한 감정, 능력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어 양쪽을 모두 아우르면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들을 자유롭게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눈을 돌려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두지 않고 남성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는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흔히 여성의 일이라고 인식되는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남성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완전한 자아를 이루어 보다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활동, 투표, 가족, 성적인 역활 등으로 서로를 나누고 구분 짓는 것은 자신의 충분한 잠재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합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지만, 동시에 하나님 형상의 총체로 지어진 존재입니다. 남성과 여성은 단지 생물학적 구분이나 사회적 역할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지닌 다채롭고 풍성한 성품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이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기준들, 강인함은 남자의 덕목, 섬세함은 여자의 장점이라는 고정된 이미지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진정한 가능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남성성은 ‘강함, 논리, 침착함’으로, 여성성은 ‘부드러움, 감성, 순종’으로 포장되었고, 우리는 그 중 어느 하나만을 추구하며 균형을 잃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없고, 종이나 자유인이 없으며, 남자나 여자도 없습니다(갈 3:28). 이 말씀은 성별이 무의미하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 안에서는 우리가 그 구분을 넘어, 서로의 풍성함을 품을 수 있는 존재로 초대되었다는 선언입니다. 한 인간 안에 남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고, 강함과 부드러움, 이성과 감성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는 누구보다 담대했고, 권세 있게 말씀하셨으며, 무리를 이끄는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눈물 흘릴 줄 알았고, 어린아이를 품었으며, 고통받는 자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남성적’이라 불리는 강인함과 ‘여성적’이라 불리는 자비와 감성이 함께 존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담은 존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사회가 부여한 성 역할에 자신을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 진정으로 자기 안의 하나님 형상의 풍성함을 개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남성은 눈물 흘리는 법을 잊고, 여성은 분노와 결단을 숨기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틀은 더 이상 복음 안에서 유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안에 있는 섬세함도, 결단력도 모두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남성적 여성, 여성적 남성이라는 표현도 어쩌면 또 다른 틀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더 이상 ‘남자다움’, ‘여자다움’에 스스로를 제한하지 않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간다움’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정의 풍요로움, 이성의 명료함, 결단의 힘, 자비의 따뜻함, 이 모든 것을 개발해가는 삶이 곧 하나님 형상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누구냐?” 우리의 대답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나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자입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강하고 부드럽고, 단호하고 자비로운 존재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이전에는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삶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쁨과 충만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안에서의 자유이며, 온전한 인간으로의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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