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2:24~29)
두아디라 교회는 외형상 교회였지만, 그 안에는 “이세벨의 교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혼합주의와 타협의 신앙이 만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속에서도 “그 가르침을 받지 아니한 자들”을 구별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바로 “남은 자”, 하나님의 진짜 교회입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그 교훈을 받지 아니한 너희에게…”(계 2:24) 세상 어디를 보아도 참된 신앙의 흔적이 희미해지고, 교회가 세속에 잠식된 듯 보일 때조차 하나님은 결코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창세 전부터 택하신 자들은 시대마다, 나라마다, 모양을 달리하여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남은 자는 스스로 남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남기신 자입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엘리야의 칠천인, 그들은 다 자기 의로 남은 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으로 보존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세상은 언제나 숫자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진리의 무게로 일하십니다. 다수가 아니라 은혜로 선택된 소수,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구원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남은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그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계 2:25) 여기서 “너희에게 있는 그것”은 그들이 받은 복음입니다. 그 복음으로 인해 그들 안에 생겨난 사랑, 믿음, 섬김, 인내를 말합니다. 이것을 ‘굳게 잡는다’는 것은 수동적 방어가 아니라, 능동적 성숙을 뜻합니다. 복음을 붙잡는다는 것은 그 복음의 능력으로 더 깊이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멈춰 서 있는 상태가 아니라, 붙잡을수록 더 자라가는 생명 운동입니다.
남은 자는 거짓 교훈에 매혹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계 2:24). 이는 ‘무지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거짓된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빠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조명받은 자는 하나님의 깊은 것(고전 2:10)을 알고, 거짓 영의 달콤한 속삭임을 분별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교리적으로 정통한 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 즉 복음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남은 자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계 2:24) 이 말씀은 얼마나 복음적인 위로입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언제나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웁니다.(마 23:4)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30)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남은 자는 이미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는 의무가 아니라 감사, 짐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고… 나는 그에게 샛별을 주리라.”(계 2:26~28) 여기서 ‘권세’는 단순한 통치력이 아닙니다. ‘엑스’와 ‘우시아’의 합성어로, 본질에서 흘러나오는 내적인 힘을 뜻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성품과 생명이 내 안에 거하여 타인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살리고,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는 영적 권세입니다. 그리고 “샛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계 22:16)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남은 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상으로 주십니다. 이것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러시아의 니콜라스 1세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군의 젊은 장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장교였습니다. 그는 부대의 재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도박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크게 도박을 하지는 않았지만 몇 년간에 걸쳐 조금 씩 조금 씩 부대 공금을 잃은 게 나중에는 도저히 채워 놓을 수 없는 금액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에 감사가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젊은 장교는 자기가 그동안 잃은 돈의 액수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천문학 적인 돈이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 돈은 다시 채워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청년 장교는 모두가 잠이 들면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밤 12시가 되면 자기 막사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하기로 하고 그 시간이 될 때까지 그는 종이에 이런 저런 자기의 심경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 엄청난 빛,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나의 죽음으로밖에 갚을 수가 없다, 누가 갚을 수 있는가?’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는 가끔 일반 사병의 군복을 입고 사병들의 막사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에 니콜라스 1세는 마침 그 청년 장교의 부대를 방문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 유독 불이 켜져 있는 한 막사를 발견했습니다. 니콜라스 1세는 살그머니 그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권총을 들고 잠들어 있는 청년 장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낙서를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이 엄청난 빛,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나의 죽음으로밖에 갚을 수가 없다, 누가 갚을 수 있는가?’ 니콜라스 1세는 그 젊은 청년 장교가 자살을 하려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청년 장교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 장교가 써 놓은 그 글 아래에다가 ‘나, 니콜라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사인을 하고 조용히 나왔습니다. 그 청년 장교는 아침이 되서야 잠이 깼습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종이에 이상한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 이 빛을 갚을 수 있는가?’라는 글 아래에 ‘나 니콜라스’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군 기밀문서를 다룰 때 보았던 황제의 사인이 거기에 적힌 것을 보았습니다. 청년 장교는 생각했습니다. ‘어제 밤 황제가 오셔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아셨구나, 그런데 그 황제께서는 나를 벌하시는 대신에 자기가 그 빚을 대신 갚겠다고 하신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황제의 궁정에서 돈 가방을 실은 마차가 그 막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대의 감사에 부족액을 정확하게 채워 놓고 갔습니다. 이제 그가 갚아야 할 것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은 죄 지은 것밖에 없는데 황제는 아무 조건 없이 그의 재산을 들여 그를 살려 준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니콜라스 황제는 러시아 정교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그 청년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설교에 등장한 니콜라스 1세와 장교의 일화는 복음의 핵심을 감동적으로 비유합니다. 죄를 저지른 장교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고, 그의 유일한 결말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제가 대신 서명하며 말합니다. “내가 갚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예수님이 갚으신 것. 그 은혜를 입은 자들이 바로 ‘남은 자’입니다. 그들은 죽지 않습니다. 이미 대속의 값이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입은 남은 자들이 두아디라 교회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흉흉해도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잃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진리의 길이 희미하고, 세속적 성공과 신비주의가 교회를 잠식하는 이때, 하나님은 여전히 남은 자들을 세상 속에 숨겨 두셨습니다. 그들은 이름 없는 자리에서 복음을 붙잡고, 사랑과 인내로 믿음을 지켜내는 자들입니다. 혹시 당신이 그 남은 자 중 하나입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있는 그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그 복음을 놓지 마십시오. 그 복음이 당신의 모든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 복음이 당신의 생명이며, 그 복음이 당신 안에서 ‘샛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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