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속으로

율법의 진의와 경고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18.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 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 하느니라."(마태복음 23:2~7)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모세의 자리란, 회당 안에 있는 설교자의 자리를 말합니다. 그걸 모세의 자리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걸 비난하십니다. 설교자가 설교자의 자리에 앉아서 설교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요? 그런데 왜 주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앉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실까요?

3절을 보면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그들을 비난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율법을 지키라는 걸까요? 말만하지 말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요지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주님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4절에서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주님께서도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고 계시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고 하신 것은 율법의 진의를 아는 자들에게서 나오는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바에 의하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그 율법지킴과 가르침으로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를 차지하는 데에 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데에 율법 지킴과 가르침을 오용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율법은 인간들이 얼마나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밝히고 드러내는 것으로 주어진 것인데 어떻게 그 율법으로 상석과 상좌에 올라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행위는 진짜 성도의 삶에서는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니 그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그러한 일갈과 함께 던지시는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는 명령은 어떤 명령이겠습니까? 진짜 율법의 올바른 기능에 올바로 반응하여 낮은 자리로 내려가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게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애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과 이웃에게로 그 사랑의 과녁을 옮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율법을 자기를 높이는 데에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단호한 경고의 말씀을 던지십니다.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이 말씀은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닙니다. 그 깊은 곳에는 율법의 본래적 의도와 그것을 오용한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회당 안에 있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바는 옳다고 인정하셨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율법의 진리를 삶으로는 전혀 살아내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율법의 조항들을 엮어 사람들에게 짐처럼 지우고는, 정작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외식과 위선이 그들의 종교적 행위의 중심이었습니다. 경문을 넓히고 옷 술을 크게 하여 자신들의 경건함을 과시했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를 탐하며 사람들의 칭찬과 인사를 즐겼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자기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삼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고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저희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의 겉모습은 거룩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자기를 숭배하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나아가야 함에도, 그들은 그 율법을 발판 삼아 스스로를 높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오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인간이 얼마나 죄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함으로써,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그리스도를 사모하게 만드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거울을 보지 않고, 오히려 그 거울을 남에게 들이밀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말은 행하고 지키라”고 하신 말씀의 진의는, 단순히 율법 조항을 하나하나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의 진짜 목적에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곧, 그 말씀을 통해 자기를 비우고, 낮은 자리에 내려가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방향을 전환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율법의 성취는 자기를 낮추는 데 있습니다. 모세의 자리에 앉는 것은 설교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지만, 진정한 설교자는 그 자리를 특권으로 여기지 않고 책임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는, 그 말씀 앞에 자신이 먼저 무릎 꿇는 자여야 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낮은 자리로 이끄는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경고를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말씀을 ‘나를 위한’ 자양분으로만 여기며, 그것을 남보다 나은 위치에 서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알고, 설교하고, 가르친다는 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경건과 일치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립니다.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의로움이 아닙니다. 진정한 말씀의 순종은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낮은 자리를 택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이끄는 자리는 회당의 상좌가 아니라, 골고다 언덕입니다. 그 언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내야 합니다.

"주님, 종교적 외식과 자기 자랑으로 율법을 오용했던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통해, 저의 내면을 비추어 봅니다.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이중성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율법의 진의가 저를 낮추시고, 진정한 사랑과 겸손으로 이끄시게 하옵소서. 예수님처럼 낮은 자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성경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혜와 고난의 기도  (0) 2025.05.18
불세례와 십자가의 의미  (0) 2025.05.18
성도에게 일어나는 성전 척량  (0) 2025.05.17
말씀, 창조, 그리고 비워짐  (0) 2025.05.17
종교놀이를 거절한 자  (0) 202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