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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무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9.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느니라”(고린도전서 7:20, 12:18)

나무는 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햇빛의 각도가 달라지고, 바람의 냄새가 달라져도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그것은 문제도, 결핍도 아니었습니다. 나무는 그저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어느 화창한 봄날, 나무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
나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질문은 생각보다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고, 그저 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는 사실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불행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라는 인식이 마음속에 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자리에 쓸쓸함이 들어왔습니다.

쓸쓸함은 늘 그렇듯, 비교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비교는 개구리의 등장으로 더 또렷해졌습니다. 홍수를 피해 팔짝팔짝 뛰어온 개구리는 생동감 그 자체였습니다. “
살았다!”라고 외치는 그 소리는,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에게는 생명력의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개구리는 자신도 한때는 꼬리만 흔들던 올챙이였다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흔들어 결국 다리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는 나무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 ‘움직이면 새로운 인생이 열린다.’ 그 순간부터 나무의 존재는 갑자기 부족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은 뒤처진 것이 되었고, 뿌리는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무는 생각합니다. “나도 다리를 가질 수 있다면, 나도 어디든 갈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나무는 자신의 뿌리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부정한 채, 다른 존재의 방식으로 살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뿌리는 꼬리가 아니었고, 나무는 개구리가 아니었습니다. 애쓰면 애쓸수록 기운은 빠져나갔고, 오히려 중심이 흔들렸습니다.

이 장면은 너무도 우리 신앙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살지 못할까?” “나는 왜 저렇게 자유롭지 못할까?” “왜 나는 늘 같은 자리인 것 같을까?” 그리고 그 질문은 곧 자기 부정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리, 하나님이 허락하신 형편, 하나님이 빚으신 모습이 갑자기 잘못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나무이면서 개구리처럼 뛰려고 애씁니다. 뿌리를 버리고 다리를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각 지체는 서로 다르며, 다름이 곧 무가치함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무능이 아니라, 머무는 자리에서 감당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는 비록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 자리에 서서 그늘이 되어 주고 뿌리로 땅을 붙들고 열매로 다른 생명을 살립니다.

홍수가 오면 개구리는 도망칠 수 있지만,
나무는 뿌리로 버팁니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 존재입다. 개구리는 떠납니다. 나무는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그러나 이 고독은 이전과 다릅니다. 이제 나무는 문제가 ‘
움직이지 못함’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부끄러워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은 더 빨리, 더 멀리 가는 연습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에 뿌리내리는 은혜입니다. 다리를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뿌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아 불안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나무의 이야기를 기억하십시오.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는 동안, 하나님은 이미 생명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머무는 자리도, 은혜의 자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