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네는 꿈이 뭔가요?”면접관의 질문은 짧았지만, 그날의 그는 그 한마디 앞에서 완전히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꿈에 대해 생각해 본 게 언제였는지조차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단 하나, 빨리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꿈을 돌아볼 여유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용기도 없었습니다.
말문이 막힌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식은땀만 흘리다 면접은 끝났습니다. 건물을 나서며 그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 들어오는 게 제 꿈입니다’라고라도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습니다.
버스비를 아끼자는 핑계로 정류장을 지나쳐 걷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너무 무거워 바로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 낙방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우울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분명 그때의 그에게도 꿈이 있었을 텐데,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습니다. 그 시절의 삶은 지금처럼 불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현재도, 미래도, 그 자신도 모두 불안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안도, 학벌도, 재산도 없고, 특별한 재능이나 외모, 유머도 없는 그였습니다. 이런 그가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향을 알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고, 그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발길을 돌려 가까운 작은 산에 올랐습니다. 자주 약수터에 오르던 익숙한 길을 걷다가, 중간쯤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오솔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듯한 길이었습니다.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그날은 왠지 그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상하게도 그 길을 걸을수록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우울함이 옅어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잔잔한 호기심이 올라왔습니다. 처음 가보는 길, 숲의 고요함, 이름 모를 새소리, 그는 오랜만에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참을 걷자 마치 숲이 그를 위해 준비해 둔 것처럼 작은 풀밭이 나타났습니다. 그 한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었습니다. 주변의 나무들과 떨어져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나무는 어딘가 그와 닮아 보였습니다. 괜히 슬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또 쓸데없는 공상이야.” 현실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말, 이런 감상에 빠져 있다가는 도태될 거라는 말들, 그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현실적’이 되려고 애쓸수록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응어리가 더 커져 갔습니다. 그 안의 열망과 가능성, 존재 자체를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것 같은 슬픔이 그를 짓눌렀습니다.
다시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이 나무가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는 느낌, 마치 “나도 너처럼 슬퍼”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어릴 적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디토”라고 대답하던 주인공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도 그렇다는 뜻의 그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디토……”
그는 이 나무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에게 공감해 주는 친구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이름을 붙이고 나니, 나무는 더 이상 그저 서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마음이 복잡하거나 삶이 버거울 때면 그는 디토를 찾았습니다. 풀밭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은 그만의 장소가 되었고, 디토는 그의 삶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날 그가 만난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잊고 지내던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흔들리던 자신, 꿈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자신,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의 공감을 갈망하던 질기 자신 말입니다.
어쩌면 꿈이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이렇게 멈춰 서서 자기 마음의 소리를 다시 듣는 데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무처럼 말없이 서서, 그저 “디토”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 충분히 작은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디토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알아주는 존재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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