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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평안하세요? - 십자가가 허락한 평강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0.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로마 1:7)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너무도 익숙하게 듣는 인사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실제 삶의 무게 앞에서도 유효한지,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을까요. 평강이라는 단어는 늘 부드럽고 따뜻한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복음을 들으며 신앙생활을 해온 분이었지만, 성경 말씀을 다시 듣는 과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예수가 성경의 예수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 설교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
그런 설교를 교회에서 하면 교인들이 다 떠난다.” “그런 말씀을 듣는 성도들은 특이한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왜 십자가, 자기부인, 은혜, 죄, 심판을 말하면 사람들이 떠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왜 그런 말씀을 붙들고 사는 성도들은 ‘
별종’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복음적 설교는 결코 귀에 달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애써 쌓아 올린 선함을 의심하게 만들며, “
너는 날마다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잘되는 것이 아니라 망하는 쪽이 길일 수 있다고 말하고, 붙들고 있던 세상적 안정감이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폭로합니다. 그런 말씀 앞에서 마음이 편안할 리 없습니다. 오히려 불편하고, 아프고,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그 자리에 다시 앉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 불편함 속에만 진짜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과 혼란 속에 있던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이라고 인사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평강이 상황의 변화나 현실의 개선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환경을 먼저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미 주어진 은혜와 평강을 선언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외적 조건이 사라져서 얻어지는 안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화목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그 완료된 구원의 사건에서 흘러나오는 상태가 바로 평강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평강은 박해 속에서도, 실패 속에서도, 병상 위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삶에서 무언가가 잘 풀려서 생긴 감정이 아니라, 예수 쪽에서 이미 이루어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도 “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그리고 그 평강의 근거로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평강은 상처 없는 삶의 결과가 아니라, 상처를 통과한 구속의 증거였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다른 종류의 평강을 약속합니다. 안정된 재정, 건강한 몸,ㅊ문제없는 관계, 예측 가능한 미래 그리고 교회마저 그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곳으로 변질될 때, 십자가는 불편한 장애물이 됩니다. 죄를 말하지 않고, 심판을 말하지 않으며,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 평강, 성경은 그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참된 평강은 오히려 전쟁을 불러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순간, 우리는 하나님 대신 의지하던 모든 것들과 갈등하게 됩니다. 재물, 성공, 자존심, 안전지대가 하나씩 무너집니다.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을 고백한 직후 바알의 단을 헐어야 했던 것처럼, 하늘의 평강은 반드시 우상들과의 전쟁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할수록 세상은 불편해지고, 세상 것이 무너질수록 하나님 안에서는 더 안전해집니다. 이 안전함, 이 신뢰, 이 맡김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평강입니다.

정말 평안하세요?” 이 질문은 지금도 우리를 시험합니다. 내가 느끼는 평안은 하나님과의 화목에서 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 힘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서 얻은 안도감입니까.

예수님은 세상과 타협하여 얻는 평강을 주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깨뜨리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평강을 우리에게 선물하셨습니다. 불편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평강, 아프지만 취소되지 않는 평강, 그 평강이 오늘도 성도를 다시 예배의 자리로 불러 앉힙니다.